소멸시대 지역경찰 - 4화
7월 중순,
비가 온다. 그냥 비가 아니라, 마을이 통째로 물에 잠기겠다 싶은 비다. 파출소 천장은 이미 빗방울 맞는 소리에 풍물놀이가 열렸고, 시장바닥은 어느새 한강을 이루어 범람하고 있었다.
역대급 호우에 발맞추어 우리 경찰서의 모든 지구대 파출소 신고창에도 오랜만에 붉은 비가 내린다.
“삐삐삐”
“코드 제로라 그런지 빨간색 알림음으로 신고창이 도배가 되네요. 팀장님 오늘 신고는 뛸 일이 많겠죠”
나는 호루라기와 서류 가방 대신 장화와 우비를 주워 담으며 말했다.
“뛰긴 뭘 뛰어. 오늘은 신나게 퍼내야지. 바다 같은 물을”
과거 폭우로 몇 번의 참사 이후 경찰과 지자체는 미리 침수구역을 설정한 뒤에 호우 주의보가 내리면 신속하게 막아놓는다. 덕분에 도로를 통제하는 일은 체계화되었지만 폭우를 예측하여 어딘가 지대가 낮은 곳이 침수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 ‘물 푸는’일은 경찰의 몫이 되었다.
뉴스를 보며 신고에 대비해 준비를 다 할 즈음 가구공장에서 첫 신고가 들어왔다.
“경찰 아저씨! 소파가 물을 먹고 있어요. 빨리 와요. 빨리”
소파가 물을 먹는다니 처음 듣는 말을 들었다. 현장에 도착하니 정말이었다. 수많은 소파들이 들어선 가구공장 바닥으로 자박자박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사장님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외쳤다.
“아우 이건 프리미엄 라인이라 몇백이 넘는 거예요! 이 라인에 물차기 시작하면 우린 망한다고요. 그냥!!”
사장님의 비명에 우리는 소파 구조대를 자청했다.
한 명을 물을 퍼내고, 한 명은 물길을 내주고, 두 명은 소파를 끝에서부터 뒤로 밀쳐주는 사각 협공으로 소파 하나하나를 옮겨주었다.
누가 보면 홍수에 고립된 인명에 대한 구조작전인 줄 알았을 거다. 얼마나 가구공장에서 물을 퍼냈을까. 얼추 중요한 가구들을 구조하여 팔을 걷어붙일 즈음. 곧바로 ‘축사가 물에 잠긴다’라는 code 0(코드 제로) 신고가 들어왔다.
고맙다는 가구공장 직원들의 외침을 뒤로 한 채 2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철제 뼈대로 만들어 놓은 축사 건물이었다. 순찰을 하며 몇 번 본적은 있지만, 축사 내부로 들어온 것은 처음이었다. 낯선 진흙과 비료가 섞인듯한 오묘한 냄새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자 내부에서 다급하게 신고자가 소리쳤다.
“빨리 와서 좀 도와줘요. 송아지 한 놈이 수영을 못하는 건지 겁을 먹은 건지 원.”
대부분의 소들은 고지대로 옮겨놨지만 작은 송아지 한 마리가 미처 따라가지 못한 듯 무릎까지 물에 잠긴 채 꼼짝을 하지 못하였다.
신고자가 송아지를 달래는 동안 우리는 송아지 발치에 고여있는 물길을 바깥으로 빼기 위해 배수를 팠다. 삽 대신 포댓자루를 물구덩이에 던져 물길을 틀었고, 팀장님과 신고자가 합심하여 송아지의 앞자리를 붙잡고 엉덩이를 밀며 겨우 높은 곳으로 송아지를 끌어 올렸다.
소는 발을 질질 끌며 올라오고는 “푸흐우” 알 수 없는 김을 내뿜었다. 축사 주인은 살다 살다 이런 비는 처음 본다면서 연거푸 우리에게 송아지를 구해주어 고맙다고 하였다. 그리고 축사 주인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곧바로 신고가 쏟아졌다.
다음 도착 장소는 옛 한옥 가정집이었다. 심지어 작은 동산 밑에 지어진 집이라 그런지 인근 가정집중에서 유일하게 토사물이 절벽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곳이었다.
“순사 양반 !! 우리 집 마당이 둥둥 떠다니게 생겼어!!”
ㅁ자형태의 집은 말 그대로 신발을 벗으면 자연스럽게 족욕이 되는 정도였다. 방 한가운데를 차지한 양동이 십수 개가 이미 항복을 선언한 듯 넘쳐나고 있었다.
더군다나 부엌도 현대식이 아니고 예전 아궁이 식이라 그런지 빗물이 들어오는 족족 아궁이로 모조리 흘려 들어가, 할머니는 쉴 새 없이 물을 퍼냈지만, 홍수를 서까래로 막아봐야 소용이 없었다. 건축물이 워낙 저지대에 위치한 탓에 아궁이가 문제가 아니라, 온 집이 이러다가 물에 잠길 판이었다.
몸에 힘이 빠지고 땀인지 빗물인지 모르는 수분으로 온몸이 절여졌지만, 불평불만을 하기에는 현장 상황이 너무 다급했다.
우리는 일단 재빨리 대야를 찾아 물을 퍼냈다. 그리고 곧바로 온 소방대원들과 함께 포댓자루로 제방을 쌓고 삽질로 물길을 내어 더는 물이 차지 않도록 온종일 물을 퍼냈다. 소방차가 펌프까지 동원하며 몇십 분간 노력한 끝에 집안에 가득 차 있던 족욕탕은 흔적이 지워졌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다음에 오면 내가 꼭 막걸리 한 잔씩 돌릴 테니 꼭 와요!!”
해가 지고, 우린 마을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를 한 바퀴 돌고 돌아 파출소로 향하였다. 다행히 이 기록적인 폭우 과정에서 다치거나 사망자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옷은 우비를 뚫고 흠뻑 젖어버렸고 장화 안에는 뭐가 발인지 진흙인지 모를 정도로 질퍽거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우리가 푼 건 집안의 물이 아니라, 마음속에 차오르던 근심이었다.
그날 퇴근 직전 돌아본 마을 골목길은 조용했다. 이제는 도로에 생겨났던 작은 한강도 사라지고, 곳곳에는 흐르던 빗물 대신 고비는 넘겼다는 작은 안도감만이 흐르고 있었다.
Tip
- code0는 강력범죄의 현행범, 자살시도, 재난등 매우 긴급한 신고에 대응하는 코드로 관할에 상관없이 인근 순찰차가 동원되게 되어있다.
- 특히나 "악" 소리를 지르거나 "살려주세요"같이 비명수준의 짧은 신고의 경우에도, 과거와 달리 즉각 code0가 발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