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신고 031!

소멸시대 지역경찰 - 6화

by 푸르름

긴급신고 112.

삼척동자도 다 아는 범죄 신고 번호이다. 이 번호는 많은 것들을 도와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번호다.


그러나 내가 근무하는 파출소에서 주민들은 112로 절대 신고하지 않는다. 긴급신고 112는 알아도 자기지역 파출소 전화번호를 외우는 사람은 적을 것임에도 대체 시골 사시는 어르신들은 어떻게 알고 매번 전화를 하시는 건지. 이곳에서는 사람이 실종되어도, 교통사고가 나도 포도밭에 펜스를 누군가 훼손해도 031로 시작하는 파출소 직통번호로 전화를 건다.


물론, 031-xxxx-xxxx로 신고하여도 경찰관이 이를 듣고 직접 신고시스템에 입력하면 되지만, 위치가 추적되고 기록이 남는다는 점에서 범죄 신고는 반드시 112로 신고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몇 번을 말하고 타일러도 주민분들은 들으실 때는 “아, 네 네.” 하시지만 일만 터지면 직통이다. 031로 시작되는 지역번호를 말이다.

처음에는 적응이 되지 않아 112로 신고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 말씀드리고 또 드리고 적어도 드렸지만 몇 달째 031로 긴급신고가 온다.

“아이고 경찰관님. 여기 사고가 났어요. 빨리 좀 와주세요”

“어째요? 우리 집 바깥양반이 또 집을 나가서 못 찾아오고 있어요. 실종신고 좀 해주세요”

이런 신고들이 031 번호로 하여 경찰관들의 도움을 구한다. 그러나 이렇게 위치가 중요한 사건들의 경우 112 신고가 특히나 더 필수적이므로 요구된다. 다만 일평생을 살아오신 분들을 어찌 말 한마디로 의식을 바꿀 수 있겠는가. 급하거나 필수적인 것이 아니면 꼭 다음에 112로 신고해달라 말하고 우리가 직접 112로 신고접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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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바깥 온도가 40도에 육박하는 날. 112는 신고는 1건도 없이 031로만 신고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여기 OO리(삼존리) 24번지인데 오빠가 와서 집안을 다 부수고 있어요. 빨리 와줘요!!”

“아이고 할머니 이리로 전화한 거 그대로 112로 신고해주셔야 해요”

“예? 그냥 좀 해줘요. 어떻게 다시 말해 내가 정신이 하나도 없어 못 해요”

“그럼 24번지 어디에요 할머니!!”

그러나 이미 할머니는 전화를 끊어버리고 다시 전화해도 받지를 않았다. 031로 신고한 것을 우리가 112 신고시스템에 접수한다고 하여도 이렇게 되면 위치추적도 불가하고, 그 일대를 다 찾는 수밖에 없었다.

팀장님에게 전산입력 처리를 부탁한 뒤 우리는 재빨리 무전을 하고 해당 위치로 차를 몰고 갔다. 다행히 해당 리에 집은 5~6채 밖에 없었고 주민들은 저마다 나와서 한 집을 아주 친절하게 직접 같이 가주시면서 가리켰다.


우리는 경고 차원에서 경광등을 울리며 주변을 천천히 다가갔다. 그곳에는 문을 활짝 연 채로 노년의 남매가 서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한참을 싸운 듯 유리문은 박살이 나 있었고 그 앞에 나무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남매사이인 둘은 서로 멱살을 잡고 있다가 우리를 보아도 고함치는 것을 멈출 줄 몰랐다. 나는 할아버지를 반쯤 모시고 가며 분리한 채로 진술을 이어갔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버스를 타고 돌아가기로 하였고, 신고자인 할머니에게 추후 과정을 설명해주었다.


그러면서 끝으로 기록에 남기기 위해서라도 다음에는 꼭 031이 아닌 112로 신고를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나 연신 고맙다던 할머님은 알았다고 하면서도 끝내 “그래도 나는 031이 편하다. 아 우리 경찰관님 아니었으면 난 맞았을지도 몰려” 하시며 말을 흐렸다. 또 그 말씀을 들으니 코끝이 시큰거렸다. 힘없는 노년의 어르신들은 우리가 문제의 해답이자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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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동을 마치고 돌아가는 와중에도 031로 신고는 계속되었다. 출동 시에는 3명이 함께 12시간을 근무하므로 출동하면 파출소에는 아무도 남지 않아 보급 핸드폰으로 회선을 돌려놓는다. 이 때문에 신고자와 대화하는 중에도 핸드폰은 쉬지 않고 울린다.


“여기 김oo 할아버지 집인데요. 또 빌라 앞에서 술 먹고 난동 부리니까 빨리 와요”

“바로 지금 출발할 테니까 이 신고 내용 그대로 112로 신고 다시 주세요!”

또 다른 긴급신고 031 신고에 팀장님을 부르며 시동을 건 채 신고자에게 재빠르게 요청하였다.

“아우 몰라 나도 지나가다 그냥 신고한 거니까 그냥 빨리 와요.!”


역시나 ‘장소’를 먼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언급하고 끊는 것은 여전하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김oo 할아버지는 관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극 상습 주취자라, 우리는 바로 출동하였다.

현장에 도착하자 신고자는 멀리서 우리에게 손은 흔들었다. 지나가는 길이라고 하셨지만, 결과를 보려고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근처에서 빌라 현관 유리문을 붙잡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김 씨 할아버지를 마주칠 수 있었다. 그는 우리를 보자마자 죽이네 살리네! 욕설을 이어가더니 30여 분 뒤 우리의 부축을 받고 조용히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우 신고자분, 우리가 끝까지 못 받았으면 언제까지 기다리시려고 그랬어요. 이런 신고는 112로 해주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그래도 오고 가며 한 번이라도 만난 여기 경찰관이 더 잘 알지. 112로 모르는 사람한테 백날 설명하는 것보단 파출소 분들 기다리는 게 나아요! 아, 그럼 그럼”

‘긴급’신고보다 우리와 대화하는 게 더 중요한지 역시나 ‘우리를 기다리겠다’라는 말만 반복하였다.


이후로도 오후 내내 5~6시간을 031로 온 신고 전화를 해결하며 집 문을 부수고 서로 주먹다짐을 하는 도중에도 031로 전화를 건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위치가 추적되고 녹음이 되며, 기록이 3년간 보관되는 112 신고 대신 031로 시작된는 지역 전화를 하는 심리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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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이 땀에 절여져 차 시트가 다 젖는 상태로 퇴근하는 길.

나의 궁금증에 팀장님께서는 주민분들은 112로 해야 함을 알면서도, 꿋꿋이 031로 시작하는 지역 전화를 거는 이유는 단 하나 ‘낯설음’ 때문일 것이라 하셨다. 신고자들 대부분이 이곳에서 나고 자란지 몇십 년일 테니 112 응대 경찰관들과 같이 모르는 이에게 신고하는 ‘낯설음’ 보다는 아무리 늦어도 몇 번이라도 보았던 파출소 직원들이 안심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우리가 ‘안심이’들인 것이다. 그리고 확신하시는 것 같다. ‘도와줄거야. 아, 그럼 그럼 우리 마을 경찰이 오면 도와줄 거야.’ 이런 확신.


경찰에 일하고 있기에 경찰이 어렵지 않은 것일 뿐, 일반인이 112로 신고를 하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임을 다시 한번 깨우칠 수 있었다.


그리고 6시간을 031로 신고를 받아보며 112로 신고를 해달라고 설명하는 대신, 빠르게 신고자의 상황을 파악하고 입력할 수 있도록 지역 지리를 외우기로 마음먹었다.


생각해보니 단축번호로 저장하면 112 번호보다 031이 쉬울수도 있겠네.


그래도 긴급신고는 031보다는 112로 해주세요!



Tip

- 112치안종합상황실 운영 및 신고처리 규칙 제 20조 제1항상 코드0, 코드1, 코드2로 분류된 112 신고 자료는 3년간 보존한다.

- 동 조문 제 2호에 따르면 녹음이나 녹화 자료는 3개월간 보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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