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시대 지역경찰 - 9화
어릴 적 나는 온 집안을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노는 그런 아이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내 옷은 땀에 젖어 있었다.
1층에 살아서 아랫집 소음 걱정은 없었으나 부모님에게는 견디기 힘든 고역이었다. 그런 나의 힘을 빼는 수단은 아버지의 만담이었다.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때의 나는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밤마다 뛰어다녔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아버지는 이야기를 만들기를 좋아하셨고 남들에게 들려주면서 혹하게 만드는 비상한 재주를 가지고 계셨다. 아버지의 이야기는 다양한 주제 역사, 전설 모험담들로 나를 매료시켰고 그중에서도 가장 관심 있었던 주제는 괴담이었다.
“이 아파트가 공동묘지였단다.” 그러면 나는 호기심에 그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7층엔 귀신 들린 여자가 아이들을 찾아다닌다더라.” 아버지의 표정과 목소리가 바뀔때면 등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 듯 했다.
그 덕분에 어두운 골목길이나 숲, 빈집은 나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고, 거울을 볼 때면 저 너머에 다른 누군가가 비치지 않을까 숨을 먼저 크게 쉬는 버릇까지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어른이 되고 나니 아버지 이야기 속에 등장했던 귀신들보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무서운 것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경찰이 된 나는 어두운 골목길이나 거울이 더 두려운 존재는 아니었다. 현실에서 생기는 각종 범죄가 그 괴담에서 나온 인물들을 이겨버렸다.
그날 역시 그랬다.
새벽 3시.
세상이 조용하고, 골목은 가로등 불빛 하나로 버티는 시간이었다.
도무지 졸리지 않아 순찰을 한 바퀴 더 돌았다. 무슨 예감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골목길 안쪽, 홍 경장님이 속도를 줄이며 말했다.
“차가 있네요. 그런데…. 안에 사람이 없어요.”
검은색 차 한 대가 흰 경차를 들이받은 채 멈춰 있었다. 차 문은 잠기지 않았고, 운전석은 비어 있었다. 연락처 명패도 없었다.
운전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이었고, 사건 현장은 조용했다.
피해 차량 차주에게 연락을 넣었고, 번쩍대는 순찰차 경광등에 잠이 깼는지 곧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이 동네 원래 기운이 좀 안 좋아요. 예전에 여기서 사건도 있었고…”
“귀신이 차를 몬 거 아냐?” 초등학교 때 아버지에게 들었던 귀신이라는 용어에 순간 당황했다.
피해자에 인적사항을 채 적기도 전에, 골목에는 또 하나의 괴담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현실은 괴담보다 훨씬 무섭고 자주 웃기고, 더 자주 어이없기 마련이다. 차량을 확인해 보니 사고 차주는 인천에 거주하는 외국인이었다. 이 동네 사람이 아니라면, 누군가 잘못 들어온 거겠지.
현장 주변을 훑다가, 100미터쯤 떨어진 주택 외벽에 설치된 CCTV를 발견했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초인종을 눌렀고, 새벽 세 시였음에도 아주머니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녹화 영상을 보여주시며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그리고 우리는 아주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보았다.
사고 차량이, 아무도 타지 않은 상태로, 천천히 뛰기로 미끄러지듯 후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장면을 본 아주머니는 “어머…”라는 짧은 탄식을 흘렸고, 나 역시 말이 잠시 막혔다.
귀신이라도 탄 듯한 그 움직임에, 누구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영상이었다. 아니, 사람이 운전한다고밖에 볼 수 없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그 집 말인데… 외국인들만 사는 집이야. 거기서 살인사건도 두 번 났어. 귀신 봤다는 사람도 있고.” 다시 귀신과 살인이라는 얘기가 소환되었다.
장 씨 아주머니의 말에 괜히 등골이 서늘했다. 이거 오늘 살인 현장 목격자 되는 건가!
내가 어릴 적 들었던 이야기들이 다시 떠올랐다.
공동묘지, 복도 귀신, 울리는 현관 벨…
이상하게 그 모든 게 차 한 대의 후진 속도와 연결되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우리는 곧장 해당 주택으로 향했다. 내 다리는 조금 후들거렸고 가슴은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집은 평범했지만, 이야기를 듣고 나니 아주 음산한 분위기 느껴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테이저건에 손을 얹고 철문을 두드렸다. 마음속으로는 어떤 일이 생겨도 실수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이 마구 솟구쳤다.
잠시 후, 안에서 나온 건 순한 인상의 네팔 청년이었다.
그는 경찰을 보자마자 당황한 얼굴로 “뭐야 뭐야”를 반복했다.
흥분한 청년을 겨우 진정시키고 차분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차량은 그의 형의 차였고, 보험도 정상적으로 가입된 상태였다.
현장으로 돌아와 청년과 함께 처음부터 샅샅이 살피자 그가 주차 후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우지 않았고, 하필 그곳이 아주 미세하게 경사진 지형인 것을 알았다.
사이드 브레이크 여부부터 확인했어야 했거늘. 나 역시 새벽 3시라는 시간 때문이지 기본 중의 기본조차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가 본 ‘귀신 들린 차’는 사실 물리학의 범위 안에서 벌어진 ‘타인의 실수’였다. 다행히 사고는 정중한 사과와 함께 보험 처리로 마무리되었다.
뭔가 엄청난 것을 기대했던 나는 홍 경장님과 나는 민망함에 한참을 웃었다. 이미 해는 서서히 뜨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내 핸드폰에는 “귀신 차 사건 – 사이드 브레이크 체크 필수”라는 메모가 남아 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순찰할 때마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귀신이 와도 좋다. 쫄지 말고 기본을 지키자!”
난 사실 현실에서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막연한 기대를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힘이 작용 될 때도 있겠다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