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시대 지역경찰 - 8화
“경찰아저씨 경찰아저씨!!”
하루에 한 번도. 신고 없는 신기한 하루는 있어도 파출소 문이 열리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시골 어르신들은 신고 대신 아무리 멀어도 그대로 파출소 찾아오신다.
경제 범죄 수사과에 근무할 당시. 수백 건의 수사를 검찰로 보내거나, 불송치로 끝내왔지만, 사건이 끝난 후 찾아오는 이들은 극소수이다.
처음 수사과 발령 때는 선배 경찰들이 몸조심하라며 수사에 불만을 품고 주먹을 날리는 고소인도 있고 오물을 경찰서 근처에 끼얹는 고소인, 심각하면 염산을 가져다 부어버린 민원인도 있다고 들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전국단위에서도 극히 드문 경우이고 2년 동안 수백 건의 수사를 종결하면서, 끝난 사건의 관계인이 직접 나를 찾아온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때때로 사건을 잘 끝내줘서 고맙다고 전화하는 때도 있었으나, 수사관을 만나려고 방문하는 경우는 내 기억에는 없다.
파출소로 넘어오자 이야기는 달라졌다.
이곳에서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찾아온다. 심지어 걷지, 못하고 땅바닥에 누워있다가 5km 넘는 거리에 있는 집까지 데려다준 주취자조차 걸어서 파출소 문을 두들긴다. 그들이 파출소를 찾아오는 이유는 ‘포청천을 찾기 위해서’이다.
초등학생이든 80대가 넘는 노인분들이든 어찌 그리 억울한 게 많은지 모르겠다. 특히나 ‘누구 잘못인지 판단해 달라’는 말을 들을 때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안된다고 잘 타일러 보기도 하고 판단은 법원에서 한다고 단호하게 말해도, 그들은 이 자리에서 해결하기를 원한다. 내가 마치 모든 문제를 판단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눈치다. 민중의 지팡이! 이들에겐 맞다.
내가 판관 포청천이면 모르겠으나, 수사관도 아닌 일선 파출소 경찰관으로서 시비를 함부로 판단하기란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옛말에 ‘나라님은 멀고 원님은 가깝다고 했던가’. 이곳에선 경찰관이 포청천이 되기를 바라며 많은 이들이 찾아온다.
아마도 그날은 조금 한가하다고. 이런 날도 있구나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오후 3시쯤이었을까? 파출소 유리문에 달린 종소리가 아주 심하게 요란하게 울렸다.
“순사양반 순사양반!! 빨리 좀 와보시오”
앗! 이 순사라는 단어를 쓰는 분들은 무조건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특징은 사건은 아주 단순하지만, 해결이 쉽지 않다는 공통된 특징을 갖는다.
더 난처한 것은 이 목소리 아주 익숙했다는 것이다.
잊을 만하면 파출소를 찾는 그 유명한 박 씨 할아버지였다.
“어르신 신고는 112로 해주셔야 해요. 무슨 일이세요”
“옆집 할배가 내 감을 훔쳐 가다가 걸렸어!! 감나무 가지도 같이 부러뜨린 걸 내 직접 잡아 왔다고 아이고 살다 살다 친구네 감을 훔치는 할배는 내 생전 처음 보네!!”
할아버지의 다급한 목소리에 우리는 일단 두 할아버지를 파출소 식탁에 분리해 앉혔다. 범인으로 지목된 이웃집 할아버지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얼굴이 벌게져 계시고 숨도 헐떡거리셨다. 분명히 이 사건은 쉽지 않은 징조다.
“아니 생사람을 잡고 그래. 난 그냥 우리 집에 떨어진 감을 주웠을 뿐이야. 감이 저절로 떨어졌을 수도 있고 바람을 못 이기고 떨어진 걸 수도 있는데 어디 나를 도둑 취급을 해” 삿대질도 오고 갔다. 어? 이거 내가 초등학교 때 만화로 봤던 그 오성과 음에 나오는 얘기인데.
“바람이 감나무 가지도 부러트리요!” 또다시 삿대질이 오고 갔다.
두 할아버지는 옥신각신하며, 한쪽에서는 ‘절도죄’로 사건접수를 원하였고, 다른 한쪽은 ‘무고죄’로 덩달아 접수하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이제는 정확한 용어도 알고 계셨다.
할아버지는 서로 나에게 판단을 내려달라며 아우성이었다.
사실 원하시는 대로 사건을 접수해서 절도죄는 형사과에 무고죄는 통합수사과에 넘겨버리면 내가 할 일은 끝이다. 수사는 경찰관들이 할 테고 이에 따른 판단도 내가 아닌 수사관들이 할 일이었다.
한 달 전만 해도 절차대로 일을 마치고 퇴근 준비나 하며 빠르게 돌려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지역 사람들을 오고 가며 수개월이 보며, 이런 시골에서 이웃 간에 소송이 벌어지면 두고두고 작은 일에도 큰 싸움으로 번질 위험이 있다는 것을 보아왔다.
나는 일단 전후 사정을 파악한 뒤에 사건을 접수해도 늦지 않기에 신고자 박 씨 할아버지가 든 감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박 씨 할아버지. 감을 부러트린 걸 직접 보신 것에요?”
“그건 아니고 저 할배가 나뭇가지를 들고 있는 걸 내가 봤다니까?”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작은 지혜가 번뜩였다.
“나뭇가지를 부러트렸다면 흙이 묻어있지 않았겠네요. 그런데 감에는 진흙이 묻은 것 같은데요”
그러자 박 씨 할아버지는 무언가 항변하려다가 감을 슬쩍 보았다. 감에는 선명하게 묻은 진흙이 아래쪽에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마치 나는 떨어진 감을 맞장구치듯이.
“맞지! 맞지! 나 아니라니까 내가 뭐 한다고 감을 훔쳐 가나! 나도 돈 많아. 나를 도둑놈 취급하고 이거 나도 고소해야겠다”
흥분하는 이웃집 할아버지가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박 씨 할아버지를 궁지에만 몰아넣었다간 쌍방고소가 계속될 상황이었다.
나는 즉시 이웃집 할아버지를 따로 불러 내가 진흙 묻은 것을 발견했지만 무죄라고 법적 판단을 한 것이 아니라고 주지시켜주었다.
“아이고 박 씨 할아버지 사과 한 번 해주시고 이참에 감이나 조금 드리는 게 어떠세요”
나의 말에 박 씨 할아버지는 순간 짜증을 내비쳤지만 흙 묻은 감이 신경 쓰였는지 아니면 자신이 조금 불리하다고 느끼셨는지 뚫어지게 감을 쳐다보더니 마지못해 그러지 뭐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웃집 할아버지는 일단은 집에 가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겠다며 조금 화가 누그러지는 듯했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홍 경장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약간의 편의를 봐 드리기로 했다.
“여기까지 거리가 30분은 넘게 걸릴 텐데 지금 신고도 없으니, 해당 구역 순찰도 돌 겸 저희가 태워다 드릴게요. 화들 가라앉히세요. 그리고 박카스 좋아하시죠? 박카스 하나씩 드시고요” 박카스는 만병통치 음료다. 어르신들은 박카스를 받는 순간 대접받았다고 느끼시는지 말 온도가 완전히 달라지신다.
더구나 태워준다는 말에 할아버지들께서 보이던 살기가 누그러지고
“가서 내 감 한 상자 줄 테니 가져가”
“썩은 감이나 주지 마”라며
그들은 함께 동승을 하며 이제는 고소가 아닌 서로 만담을 나누듯 귀여운 투덕거림을 이어갔다.
그리고 어느덧 집 앞에 다다르자 사과 아닌 사과를 하며 할아버지들은 해결해 고맙다고 우리에게 인사를 해주었다. 사실 해결해드린 것은 없고 말씀을 들어드리고 박카스 드린 게 다인데.
파출소로 돌아와 보니 이미 퇴근 시간은 지나 버렸지만, 동네에 작은 다툼을 그동안 누적된 포인트 눈썰미로 해결할 수 있었으니 전혀 아쉽지 않았다. 비록 포청천처럼 뛰어난 판결을 할 수 없겠지만,
경찰이라는 위치에서 작은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니 포청천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행복한 하루였다.
내일도 “경찰 아저씨”하며 파출소 문을 활짝 여는 이들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