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골목대장

소멸시대 지역경찰 - 12화

by 푸르름

이제는 학생시절이 점점 희미해져 가지만 몇몇 기억들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르기도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골목대장 김 OO.


지금 생각해 보니 김 OO는 키도 작았고 체형도 왜소했다. 성적도 아마도 그다지 잘하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우리들에게 골목대장이었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는 대장노릇을 했고 그 아이 주변에는 잘 보이려고 모인 아이들이 늘 몇 명 있었다.

점심시간에 그 골목대장 식판 위에는 누가 주었는지는 모르나 우리 모두가 더 먹기 위해 난리 치는 반찬들이 쌓여 있었고, 비가 오는 날 그 아이는 한 번도 비를 맞고 가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아, 또 있다. 우유도 책상 위에 늘 몇 개씩 있었구나.

왜 모두가 그 골목대장에게 쩔쩔매는지 희한했다. 왜냐면 시원하게 싸워서 이기는 장면을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의 추억 속 골목대장은 품위 있게 사라졌다.


어른이 되고 보니 골목대장도 하나의 추억이 될 뿐 골목대장이라는 말조차 사어가 되었다. 아마 유명 음악프로그램에서 ‘우리 동네 골목대장’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까맣게 잊고 있었을 이야기다.


그러나 그 골목대장이라는 단어는 거짓말처럼 내 희미한 추억 속에서 튀어나왔다.

“code 0 code 0 남자 십 수명이 약국 앞에서 집단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신고”

가을바람이 슬금슬금 추워질 때 즈음. 저녁 9시가 되면서 파출소는 저녁을 먹고 밤 순찰을 준비하기 위해 분주해 있는 동안 긴급한 신고가 들어왔다.


아무리 시골 파출소라 해도 매주 들리던 신고이지만 십 수명이라니? 처음에는 잘못들은 줄 알고 잠시 멍하니 되물었다.


“상황실. 지금 십 수명이라고 하셨나요?”

“네 서둘러 긴급 출동하시기 바랍니다. 인근 순찰차가 다른 신고를 나가서 다른 곳에서 지원 보내겠습니다.”


몇 초도 되지 않아 나는 팀장님과 함께 서둘러 익숙한 약국 앞으로 출동하였다. 파출소에서 불과 2분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도착하자 정말 사내들 십여 명 정도가 서로 뒤엉켜 멱살을 잡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사람 수를 잘못 본 줄 알았다. 고작 술 먹고 왕년에 잘 나갔다며 50대 아저씨들 둘 정도가 싸우는 게 전부인 이 작은 지역사회에서. 저들은 대체 누구일까.

2발 겨우 쏠 수 있는 테이저건만으로는 제지가 될 것 같지 않았지만 팀장님도 나가시는 판에 젊은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나는 ‘그래 그냥 죽도록 맞자’는 식으로 몸을 던져서 사내들 한가운데로 헤엄치듯 다이빙해 버렸다. 아, 그때를 생각하면 조금 아찔하기도 하다.

멱살을 잡고 한창을 다투던 그들은 패기 하나로 뭉친 나의 등장에 놀라 잠시 멈칫하였지만 ‘뭐야? 혼자야?’하는 식으로 오히려 우리에게도 달려들며 소리를 질렀다.

술 냄새와 각종 음식이 섞인 악취는 정신이 아득하였다. 코를 찌르는 알코올의 농도는 나의 예민한 후각에 1인당 소주 몇 병을 마셨는지 짐작케 했다.

겨우 둘밖에 없는 우리를 향해 몇 명은 ‘저놈들 빨리 체포하세요!’ 라며 마구 화를 내었다.


두 사내들을 말리면 다른 사내들끼리 싸움이 붙어 멱살을 잡고, 다시 그쪽을 말리면 이번엔 다른 두 명이 화가 나 서로 싸움이 붙어버렸다. 그들은 약간의 불씨가 튀면 서로 주먹질을 해댈 것이 분명한 얼굴로 일촉 측 발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무기는 없었다.


서울 같은 곳이야 다른 경찰차들이 금방 금방 증원을 하면 된다지만 이곳은 면 단위. 인구 만 명에 여의도 5배 크기의 땅이지만 인구 밀도는 극히 낮은 매우 작은 도시다. 바로 옆 파출소도 도와주러 오는데 20~30분이 걸리는 판에, 더 먼 곳은 무조건 30분이 넘어야만 올 수 있다. 여기서는 사건이 터지면 무조건 해결까지 가야 한다는 각오를 하고 가야 한다.


순간 공포탄을 발사해서라도 이들을 말려야 하나 생각도 들었지만, 그러다 흥분을 한 십 수 명의 사내 중 뒤엉켜 누가 다치기라도 하면 안 되었다. 자칫 죄 없는 다른 시민들이 휘말릴 수 있기에 최후의 최후의 순간을 생각 안 할 수 없었다. 등에서 땀이 흘렀다.


아비규환 속에서 겨우겨우 터지려는 폭탄의 불씨를 막아서는 그때.

멀리서 왜소해 보이는 사내 한 명이 허겁지겁 뛰어오더니 “조용조용!!!”이라면서 사내들 한 명 한 명을 여포처럼 밀어내며 중재를 하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떼어 낼 때는 무슨 자석처럼 다시 붙더니 이 사내가 등장하자 다른 극을 만난 듯 서로가 서로를 밀어냈다.


그리고 이윽고 만화 같으면서도 당황스러운 광경이 펼쳐졌다.

공포탄을 쐬도 가라앉지 않을 것 같았던 그들의 흥분은 사내의 얼굴을 보더니 거짓말처럼 멈추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내를 알아보지 못하고 사내의 멱살을 잡아버리던 초거구의 남자도, 사내가 ‘너 내일 나 안 볼 거야?’라는 영화 속 대사 한마디에 이내 진정을 하고 바로 죄송하다고 고개를 긁적였다.


사내는 10분도 안되어서 그들을 양쪽으로 갈라서더니 각 무리에서 책임자를 한 명씩 지정하였다. 그러고는 자초지종은 내일 모여 따로 이야기하기로 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하였다.

한참을 정리하던 그는 순간 기억났다는 듯 우리 쪽을 향해 다가와 “형사님들 죄송하지만 애들을 해산시켜 보내도 될까요?. 인적사항은 제가 다 적어서 보내 드릴 수 있습니다”라고 정중하게 말하였다. 뭐지?


서로 상해를 입은 상황도 아니었고 물건이 손상된 상황도 아니기에, 우리는 상호 처벌 의사만 없으면 해산해도 좋다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사내는 무리로 돌아가 핸드폰을 켠 채로 모두에게 처벌 불원 의사를 받아 적은 뒤 책임자 두 명만 남기고 전부 집으로 보냈다.


돌아가는 사내들은 궁시렁대면서도 왜소한 사내 앞에서 감히 더 덤비지는 못하고 천천히 제 갈길을 갔다.

남은 이들의 진술을 통해 알아낸 것은 양쪽 무리가 전부 이 지역 출신의 같은 중학교동문이라는 점이다. 각 무리는 졸업 연도가 1년 차이나는 선후배가 관계였다. 그들은 각 무리끼리 술을 먹다 우연히 만나 생긴 말다툼이. 어느덧 패싸움으로 번지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 왜소한 사내는? 그는 그 시절. 중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우리 관할 지역 골목대장이었다. 자신말로는 타 지역 불량배들을 때려잡다가 골목대장이 된 것이라고 하였다. 좀 믿기는 어려웠다. 아무리 봐도 학교시절에도 그리 잘 싸워 보이지는 않았다.


골목대장은 30을 넘겨 머리가 빠지고 몸은 배불뚝이가 되어도 골목대장일까. 벌써 10년도 더 지났음에도 골목대장에게 꼼짝 못 하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영상을 찍어 필터 처리만 하면 진짜 영화 속 만들어진 장면 같았다.


인근에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한 개밖에 없는 작은 지역사회 특성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학창 시절을 넘어 성인이 되어 외지에 나가서도, 고향에는 그때 그 시절 사람들이 그대로 있으니 말이다.


인적사항을 적고 마지막으로 남은 사내들까지 돌려보내며 이곳이 지역사회이기에 해결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점점 줄고 도시는 소멸해 가는 길목에 서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골목대장들이 서로를 연결해 주기에, 어쩌면 아직 이 도시는 생명이 타오르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의 고향 골목대장 김 OO이도 아직 그 동네 골목대장일까? 나도 그와 만나면 그 시절로 돌아가 난투극을 벌이 다가도 그의 말을 전적으로 따를까?


시골 가을바람에 문득 궁금해지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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