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뚜기 경찰

소멸시대 지역경찰 - 13화

by 푸르름


어릴 적 나는 겁이 너무 많았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은 나를 늘 힘들게 했고 유치원교실 들어갈 때마다 두려움에 교실문 옆에 서 있기를 반복.

먼저 발견한 친구 손에 이끌려 들어가기도 하였다.

지금 들어도 이해가 안 되고 믿을 수 없는 것은 처음 걸음마를 배우고 가족들은 나들이를 갔을 때였다.

당시 나는 잔디밭에 발이 닿기만 하면 기겁을 하고 울어서 가족들의 실망이 엄청 컸다고 한다.

아마도 바닥의 느낌이 달랐기에 나의 두려움은 상상을 뛰어넘었을 것 같다. 군인 출신인 아버지는 내가 정상적인 남자?로 크기 어렵다고 생각 한심스러워까지 하셨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나를 계속 따라다녔고 나는 세상의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이런 내가 성격개조가 된 것은 유도를 배우면서부터이다. 내 몸은 길쭉하기보단 네모네모하여 몸에 맞는 운동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누굴 때리지 않고도 제압할 수 있다는 점이 아주 매력적인 운동이었다.

두려움이란 불안에서 오는 것이고 내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만 있다면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경험은 소심하고 두려움 많던 내가 어른들의 걱정과 달리 무사히 청소년기를 마치도록 도와주었다.


다만 대학생이 되다 친구가 좋아서, 이후에는 군대를 가야 해서 근래에는 취업준비를 한다며 갖가지 이유로 진득하게 운동을 해본 기억이 없다.

경찰에 합격하며 체력이 중요하다는 믿음에 열심히 배워보기도 했지만 경제수사팀에 발령이 나면서 몸을 쓸 일은 2년간 일어나지 않았다. 몇 달의 용돈을 모아 산 명품 유도복도 다리가 골절되어도 나갔던 유도도 그냥 시간 속에 가두어 놓았다.


누군가를 체포한다고 해도 피의자들은 순수하게 수갑 채우기를 기다렸고, 30건 이상의 사기로 100억대의 사기를 행하여 체포된 자는 “어허 수사관님 신사답게 대해주시죠”라며 호통을 치고는 남은 수갑 한쪽을 자신이 직접 채우던 사람도 있다. 내가 그 쓸모 있게 생각하던 유도기술을 써 볼 기회는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근무시간 내내 앉아있고 야근시간에도 컴퓨터에서 서류 작업을 하다 보니 2년간 내 몸은 녹슬다 못해 고장이 나는 듯했다.


살이 찌고 담배에 찌든 채로 지구대 파출소로 발령이났 을때, 살짝 걱정도 되었지만 조용한 시골로 발령이 났기에 뭔 일이 없을 것이란 믿음도 작용한듯하다.


아직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3월. 땅거미가 앉은 지 한참이 지났을 무렵 파출소 창문 밖으로 손을 휘저으며 주민 한 분이 뛰어오셨다.

“무슨 일이세요”

“경찰관님 빨리 옆에 편위점으로 가보세요 외국인이 난동을 부리고 있어요”

시골인 만큼 외국인의 수가 상당한 곳이긴 하지만 외국인이 난동이라니? 의아해하면서도 홍경장님과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편의점에 도착하자 러시아인으로 보이는 건장한 남성 한 명이 맥주캔을 든 채로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그는 근무복을 입고 있는 우리를 보고 나서도 맥주캔을 휘저으며 맥주를 땅에 뿌려대고 있었다. 보통 외국인들은 경찰복을 보면 일단 두려워하는데 이 외국인은 전혀 동요가 없었다.


자신을 가리키며 ‘아임 다미르 아임다미르’라고 외치는 사내는 내가 다가서려 하자, 주변에 휴지곽 젓가락 등을 집히는 대로 던지며 막아서려 했다.

우리는 더 큰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고 카메라를 켠 채로 외국인을 체포하고자 하였다. 그때만 해도 경제팀때와 같이 어렵지 않게 순찰차에 태워 절차대로 하면 그만이라 생각했다.


나는 수갑을 꺼내면 순순히 잡혀갈 것이라 순진하게 판단하고는 다미르에게 천천히 다가섰다. 그런데 그는 그전에 순순히 체포되던 경제사범들과는 다르게 재빠르게 땅바닥에 주저앉고는 두 다리로 내 한쪽 다리를 묶은 채 넘어트리려는 게 아닌가? 와우 너무 당황했다. 이건 뭐지 유도와 태권도에 없는 기술이 훅 들어온 것이다.

알 수 없는 행동과 기술에 당황할 새도 없이 몸이 기우뚱거리는 게 느껴졌다. 처음 당해 보는 느낌에 우왕좌왕하며 테이저건을 쏴야 하나 어쩔 줄을 몰라했다. 홍경장님도 그렇게 대응하는 외국인은 처음 보는 데다 내가 넘어질 것을 우려하는 듯 다가올지 말지 주춤하였다.


그가 힘을 주는 대로 몸이 넘어가려는 순간. 시민들과 학생들까지 유리창 밖으로 나를 보고 있었으며, 카메라로 촬영 중이라는 생각이 번뜩 스쳐 지나갔다. 여기서 넘어갔다가 유튜브에 올라가 기라도 하면 내가 문제가 아니라 경찰이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나는 젓 먹던 힘까지 끄집어내어 10여 년 간 어디에선가 배웠던 기술로 한번 균형을 잡아 버티고는, 다미르의 배를 내 무릎으로 누른 채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재빨리 다가와 준 홍경장님과 수갑을 채우고는 통째로 그를 들어 순찰차로 집어넣었다.


하마터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근무복을 입은 채로 그대로 땅바닥에 구를뻔했다는 생각에 아찔했다. 더군다나 편의점밖에는 학생들이 수업이 끝난 뒤 옹기종기 모여 카메라로 우리를 찍고 있었다. 내가 다미르에게 당해서 경찰 근무복을 입고 나뒹굴었으면 그 영상은 검색수 1위를 당하고 뉴스에 싹 도배가 되었을 것이다. ‘오늘날 무능한 경찰’로.


영상을 찍던 학생들은 엄지 척을 하면서 나에게 신기한 듯 우리에게 눈을 떼지 못하였다. 애써 미소를 보내며 자! 이건 기본이지!라는 자신감을 보였지만 등에선 땀이 줄줄 났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고 나서야 다미르가 나에게 건 기술이 주짓수의 기술 중 일종인 ‘하프가드 스윕’ 자세란 걸 알게 되었다.

다미르가 술에 취해있고 내가 운이 좋았기 망정이지 땅바닥에서 통다람쥐 마냥 여러 번 구를 뻔했다는 사실에 창피하기고 했다.


사건은 잘 마무리되었지만 다음에는 운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걱정이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그날부터 3조 2교대라 시간이 없다는 핑계와 출퇴근이 2시간이 넘어 지친다는 투정을 이겨내고 경찰관과 소방관이 많이 다니는 주짓수 도장을 다음 날 바로 등록하였다.

언제 나의 생명과 시민의 생명을 지켜 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인지 나는 주 3회 도장에 반드시 참여해 왔다. 그리고 파출소 생활이 끝날 때까지 그 철칙은 지켜나가고자 노력했다.

다행히 좋은 관장님과 관원들 덕에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이전과 달리 몸으로 부딪히는 것에 자신감도 붙어나갔다.


그리고 초보 타이틀을 어느 정도 뗀 10월. 다미르가 나에게 기술을 걸었던 편의점에서 외국인이 행패를 부린다는 신고에 용수철처럼 뛰쳐나갔다. 하나의 두려움도 없이 ‘해당인물이 다미르가 아닐까? ’라는 기대와 함께 그를 만나면 이번에는 어떤 기술이 올디 기대도 살짝 되었다

그러나 현장에 있는 외국인은 다른 이었다.


해당 외국인은 의자를 든 채로 세 번이나 우리의 말을 무시한 채로 의자를 휘둘러댔다.

이전 다미르 때 혹독히 당해본 경험상 나는 틈을 주지 않고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자마자 재빨리 수갑을 채워 그를 눕혀버렸다.

행패를 부리는 이 9할이 술에 취한 상태이기도 하고 그동안 남을 제압하는 것만 연습해 왔으니 쉽사리 끝나버렸다. 번화가도 아닌 작은 시골에서 이처럼 강한 대처를 받게 될 거라곤 전혀 예상 못한 듯 사내는

“사장님 사장님 알았어 알았어”라고 크게 외쳤다.


그의 다급한 반성에 순간 작게나마 웃음이 나와버렸다. 우리는 천천히 그를 일으키고는 편의점 직원에게 사과를 시키고 그를 체포해 갔다.

그리고 소문 아닌 소문이 났는지 나 나갈 때까지 외국인들이 인근에서 술 먹고 행패 부린 적은 없었다.

다미르 덕에 조용한 파출소가 아닌 강남이나 홍대 한복판에 던져져도 방심하지 않을 마음가짐과 체력을 가지게 되어 그에게 고맙기도 했다.


지금도 주짓수 도장사람들은 나의 입문 계기가 카자흐스탄 주취자 다미르가 주짓수 기술을 걸어서라고 하면 꾸며낸 이야기라고 웃고는 한다. 아마도 내가 경험한 아찔함을 몰라서일 것이다.


내 운동 능력상 공공의 적 강철중이나 범죄도시 마석도처럼 모든 범죄자를 단숨에 제압하는 파이터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적어도 주민들이 나를 범죄자들에 기술 걸려 넘어지는 경찰관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서 행패를 막아주는 경찰로 기억해 주기롤 바란다.


1년간 파출소에 있는 동안 다미르는 다시 우리 지역에 맨 정신으로도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다미르 사건 이후 어떤 체포과정에서도 나는 틈을 주며 체포하지 않았다. 빠르고 강력하게 체포하는 것이 상대방과 나 모두에게 신속 안전한 길임을 깨닫는 경험이었다.


어쩌면 다미르는 사무실에서 익숙함에 빠져 있었던 나에게 경찰은 현장에서는 매 순간 긴장하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나타난 또 다른 나의 자아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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