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시대 지역경찰 - 14화
“개는 밖에서 키워야지”
10대 시절 내내 5마리에 개를 키워온 아버지는 개와 놀다가 집에 들어오려 하면 늘 할머니에게 이런 꾸중을 들었다고 한다. 강아지와 함께하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결국 본인이 개집에서 가끔 자는 것을 택했다. 그만큼 아버지는 강아지를 사랑했다.
10대 5마리 강아지가 모두 떠난 이후 아버지는 수없이 새로운 반려견을 키우려 하였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폐와 호흡기가 매우 약한 나와 개털 알레르기가 있던 어머니의 반대로 번번이 실패하였다. 강아지를 데려와도 2주를 버티지 못하고 시골 친척 댁으로 강제로 보내지는 모습을 보자 아버지는 더 이상 개를 분양받는 것도 포기하였다.
그리고 어느덧 아들이 30세가 넘어서 출가하고, 어머니도 개털에 익숙해질 때 즈음 50년이 지나서야 새 반려견을 맞이했다.
복실이란 이름의 아키타 강아지는 38kg 훌쩍 넘어서는 말 그대로 대형견이지만, 집안을 거리낌 없이 드나든다. 아버지는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복실이와 함께 놀고먹고, 잠을 잔다. 나 역시 복실이를 매우 사랑하지만, 아버지가 복실이를 대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 이상의 무언가가 보이곤 했다. 마치 가족이 채워주지 못하는 어떤 외로움을 채워주는 듯했다.
그러나 이제 반려견을 맞이한 지 2년밖에 안된 나로서는 대체 아버지가 어떤 심정으로 복실이를 대하는지 알 수 없었다. 봉구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조용하던 파출소의 점심.
보통 시골 파출소에서는 점심시간에는 되도록 신고가 들어오지 않는 편이다.
공무원들을 배려한다기보다는 마을 주민분들도 점심시간은 철저하게 지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는 신고가 들어오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고, 신고가 들어오더라도 점심을 먹고 오라며 오히려 기다려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날 점심을 뜨끈한 국밥을 먹으려던 순간, 끊임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신고를 알리는 무전이 아니라, 031로 시작하는 파출소 번호로 전화가 온 것이기에 공용핸드폰으로 용무를 물었다.
“여기 서울인데요. oo 리 어머님집에서 봉구를 찾아주세요!!”
다급한 아주머니의 말씀에 순간 아동 실종인 줄 알고 서둘러 밖으로 나와 준비하려 하였다.
그러나 몇 세 아이냐는 말에 아주머니는 ‘이제 10살이 된 노견’이라고 말하였다.
강아지를 키우기 전이라면 고작 가축인 개가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고 신고를 했다며 볼멘소리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나에게도 복실이라는 가족이 있기에 그냥 무시할 수가 없었다.
아주머니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였다. 자신의 90대 노모는 강아지가 없다면 불안해서 가만있지를 못하는데, 자신은 서울에 있어서 갈 수가 없다며 어떡하냐는 말만 반복하였다.
자식 같은 노견이 사라진 것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연락을 받지 않는다며 울며 불며 하는 모습에 밥을 먹고 가겠다는 말을 할 순 없었다. 우리는 이미 주문이 들어간 국밥집에 사정을 구한 뒤 급하게 출발하였다,
아무도 살지 않을 것 같은 마을 끝자락에 당도하자 커다란 비닐하우스를 근처에 둔 푸른 철문이 우리를 반겼다. 활짝 열려있는 대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지나가자 이게 웬걸. 신고 때문에 시골집들을 가끔 방문하긴 하지만, 그런 집은 처음이었다.
마당에는 온갖 닭들이 방생된 채 돌아가니다 못해 반쯤 날아다니고 있고, 거위와 고양이들이 자유롭게 풀려있어 마치 동물원에 온 것 같았다. 우리는 수 차례 집주인 할머니를 불러 보았지만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고 지붕 위에 닭 세 마리가 너희들 뭐냐?라는 듯이 미친 듯이 노려보았다.
하는 수없이 신고자에게 전화를 걸며 마을 인근 10여 분을 헤맬 수밖에 없었다. 인근에는 마을이랄 것도 없이 커다란 폐차장 하나만 위치해 있었기에 할머니는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 90도로 허리가 굽은 채 버선발로 우왕좌왕하는 할머니는 인적사항을 묻는 와중에도 할머니는 “봉구 내 새끼 봉구”만 수없이 반복할 뿐이었다.
보통 산 근처에서 묶여있는 개들은 산으로 들로 뛰어드는 습성이 있기에 산으로 간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90세의 노인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제발 좀 봉구를 찾아달라는 말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인근 폐차장부터 집 근처 동산을 뒤지며 봉구가 갈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길 중간중간에 만나는 주민들에게 커다란 갈색 개 한 마리를 보지 못했는지 물어보았으나 다들 봉구를 만나지 못하였다.
"봉구야 어딨 니! 봉구야 놀자!"
결국 각자 흩어져서 인근 도로를 10여 분간 더 확인하고 헤어지기로 한 뒤, 나는 이번에는 신고자의 집 반대 방향을 한번 훑어보기로 하였다. 대부분이 포도밭이거나 맹지에 불과하지만 드문드문 가정집들이 존재하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탐문을 다녔다. 한참을 돌아다녔을까. 다른 신고를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돌아서려는 그때. 한 블록 건너에 있는 가정집에서 심하게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당 집 앞에 위치한 개집으로 다가서자, 어처구니없게도 원래주인으로 보이는 흰 개가 도로 한복판에서 자신의 개집을 보면서 짖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개집 안에는 봉구로 보이는 갈색개가 자신의 집인 것처럼 벌러덩 누워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순간 황당한 마음에 서둘러 사진을 찍은 뒤 신고자에게 보내 봉구가 맞는지 확인하였다, 신고자는 전화를 걸어 정말 고맙다는 말을 막아서고 큰소리로 봉구에게 말을 걸어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봉구는 무슨 일인가 하고 고개를 내밀었고 그 틈을 타 나는 목에 채워진 목줄을 잡아 들고 천천히 신고자에 인도에 따라 봉구를 데려갔다.
땀을 뻘뻘 흘리며 겨우 집에 데려가는 동안 움직이는 봉구 때문인지 근무복에는 개털이 잔뜩 묻어있었고, 옷에서 땀냄새와 개 특유의 냄새가 뒤섞여 묻어났다. 대문 앞까지 왔을 때는 내가 경찰인지 개털을 뒤집어쓴 마스코트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경찰이기 전에 사람인지라 인간적으로 굉장히 화도 많이 났지만 개를 마주한 할머니가 엉엉 울며 강아지를 안는 모습에 그런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처음 반려견을 안고 신나 하시던 아버지가 겹쳐 보였다.
드넓은 시골. 예전처럼 이웃 간의 대화도 없거니와, 배우자를 떠나보내면 노인들의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된다. 그때 그 옆구리를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해주는 이들이 바로 봉구와 같은 반려견이 아닐까 싶다.
돌아오는 길 연신 고맙다며 파출소로 먹을 것을 들고 오겠다는 신고자에게 나는 괜찮다며 시간 나면 봉구랑 함께 놀러 오시라고 말하고는 순찰차로 돌아갔다. 90이 넘은 노인이신 할머님은 연신 봉구가 혹시나 또 나가지는 않을까 개집을 힐끗힐끗 보면서도, 더 굽혀지지도 않을 허리를 연신 숙이며 고맙다고 우셨다.
봉구를 찾기 전까지 삶을 다 잃은 것처럼 움직이지도 못하시던 분이 맞나 싶을 정도로 기운이 넘쳐 보였다.
어쩌면 아버지에게도 복실이가 반려견을 넘어서, 인생의 한 조각으로 삶을 지탱하는 중대한 기둥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노인이 반 이상을 차지하는 이 지역사회에서 반려견 역시 경찰이 꼭 지켜줘야 할 소중한 시민이라 생각하니 검은 바지에 하얗게 뒤덮인 개털에도 웃음이 번진다.
봉구를 자식처럼 소중히 여기는 할머니를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은 아마도 혼자만 따뜻한 집에 들어가기가 미안해 어릴 적 개집에 들어가 함께 놀았던 아버지가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음에도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 봉구와 같은 반려견 주민과 함께 하길 바라며 봉구야 놀자를 외쳐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