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시대 지역경찰 - 15화
누군가 그랬지. 역사를 알면 미래를 알 수 있다고.
역사는 묘하게도 다른 형태이긴 하지만 반복되는 것 같다. 이것은 한 나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게도 적용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스로마신화에 크로노스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하늘의 신 우라노스 사이에는 태어난 뛰어난 대장장이 아들인 퀴쿨롭스와 강력한 힘을 가진 헤카톤케이레스라는 아들들이 있었는데, 아버지인 우라노스는 그들의 능력을 두려워한 나머지 깊은 구덩이인 타르타로스에 가둬버린다.
이에 분노한 가이아는 다른 아들들에게 아버지를 내쫓을 것을 명한다. 하지만 이에 모두 겁을 먹는데 오직 막내아들만이 잠을 자는 아버지를 습격해 쫓아버린다.
이 아들이 바로 크로노스이다.
그러나 아들에게 당한 패배를 인정할 수 없어서였을까.
우라노스는 쫓겨나며 아들 크로노스에게 “너도 자식에게 똑같은 일을 당하게 될 것이다.”라는 저주를 내린다.
아버지의 저주에 겁을 먹은 크로노스는 자식이 태어나는 족족 삼켜 버리는 것으로 운명을 막아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폭력적인 성향은 또 다른 반발을 불러왔고 결국 자신의 막내아들 제우스의 꾀에 넘어가 왕좌에서 쫓겨나며, 아버지가 내린 저주 그대로의 최후를 맞이하고 만다.
모든 경우가 그렇진 않지만, 이 이야기에서처럼 많은 아동학대가 이런 모양으로 ‘전승’ 되는 듯하다.
맞고 자란 사람이 힘을 갖게 되면, 어느 순간 자신도 누군가를 두려워했던 그 모습이 또 다른 폭력으로 모양을 바꾸어버린다.
그렇게 작은 지역사회에서 벌어지는 가정폭력은 종종 크로노스의 신화를 닮아버리는 것이다.
겨울이 다가올 즈음, 그날 출동도 그랬다.
“아동학대”라는 단어가 신고 내용에 찍혀 있었기에 어린아이인가 싶었지만 신고자는 스무 살이 넘은 아들이라 기재되어 있었다.
의아한 마음에 현장에 도착하여 반쯤 열린 문을 비집고 들어서자, 내 키보다 훨씬 크고, 덩치도 큰 두 남자가 윗옷을 벗은 채 서로 씩씩대며 엉켜 있었다.
“오늘 진짜 가만 안 둔다”
어린 사내는 우리가 보이지 않는 듯 아버지를 향하여 허공에 주먹을 휘둘러댔다. 위협적인 모습에 어깨로 들이받고 발로 밀치는 와중에 둘을 겨우 분리했지만, 두 사내는 흡사 폭주하는 덤프트럭 같았다.
“그냥 맞짱 떠. 깔끔하게 맞짱 떠”
아들의 외침에 나는 순간 멍해졌다. ‘맞짱’은… 보통 중학생 무용담에서 휘날리는 단어 아닌가.
그 단어가 산만한 어른의 입에서, 그것도 아버지에게 날아가는 걸 듣자 웃음이 아니라 한숨이 먼저 나왔다.
“선생님 경찰 앞에서 폭력을 쓰시다니요 말이 됩니까?”
“폭력이 아니라 맞짱입니다. 어차피 우리 아빠도 어릴 때 할아버지랑 마을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주먹다짐하던 사람이에요!”
“오냐 좋다. 오늘 우리 드디어 끝을 보자 너랑 나랑 둘 중 하나는 없어져야 이 싸움이 끝나지 경찰 아저씨들이 심판을 보면 되겠네”
아버지 측 역시 지지 않으려는 듯 이미 얼굴에 멍이 든 채 고함을 쳤다.
심판을 보라니. 순간 나는 이게 뭔가? 코미디인가? 싶었다.
그러나 웃기지 않는 아주 슬픈 코미디.
“아버님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멈추지 않으면 가정폭력특례법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나는 그 어느 때마다 있는 힘껏 소리를 질러가며 테이저건에 손을 가져다 댔고, 홍경장님도 동시에 수갑을 꺼냈다.
우리가 어찌나 흥분한 상태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는지 멈추지 않을 것 같았던 두 사내도 잠시 멈칫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나는 아들을, 홍경장님은 아버님 쪽을 맡아 각자 다른 방으로 밀어 넣고 문을 닫았다.
“아들분. 진정하세요. 존속폭행은 가중처벌 대상입니다. 더군다나 아무리 그래도 아버님을 상대로 맞짱이라니요. 여기서 한 번만 더 서로 싸우시면 그 순간 체포합니다.”
순간 숨이 가빠지는 아들의 모습에 나에게 덤벼드는 건 아닌가 걱정했지만, 사내는 주먹을 꽉 쥐면서도 아이처럼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아들에게 아버지는 태어날 때부터 거대한 감옥이었다. 보호막이라는 이름으로 아들을 가둬왔으나 많은 순간 그 벽은 아들을 숨 막히게 옥죄어 왔다고 한다. 유치원도 가기 전부터 행해지던 체벌과 폭언 속에서 아들은 떨면서 평생을 자라왔다고 하였다.
그러나 점점 덩치가 커지고 힘이 세지며 아들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 그 감옥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다른 곳에서 배우지 못한 채 가정이 가르쳐준 유일한 방법을 택했다.
살기 위해서, 상처에 복수하기 위해서, 아버지를 쓰러뜨리기 위해 폭력을 써야만 한다고 말이다.
한참을 이야기를 토해내던 아들은 우리의 권고대로 자신의 원룸이 있는 도시로 떠났다.
진술서를 받고 인적사항까지 적어놨지만 아들은 일단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며 나지막하게 말하고 떠났다.
나로서는 그가 겪은 세월을 감히 판단할 수 없기에, 눈앞에 놓인 상황을 매뉴얼대로 끝내는 것으로 현장을 마무리지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권력을 잡은 제우스는 자신 또한 할아버지, 아버지처럼 자신의 자식들에게 왕좌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임신한 첫 번째 아내 메티스를 먹어버리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들처럼 매 순간 또 다른 아들의 반란을 걱정하며 불편한 밤을 지새운다.
신고는 처벌을 위한 무기가 되기도 하지만, 때론 처벌을 하기 전 마지막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패이기도 하다. 어쩌면 마지막에 가서 주먹으로 끝을 보지 않고 아들이 우리에게 신고를 한 것은 크로노스의 폭력의 되물림을 끊고 싶어 한 그의 처절한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싶다.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경찰이라는 공권력을 빌려 아버지에게 더 이상의 폭력은 멈추라는 경고를 하고 싶었을 것 같다. 자신은 더 이상 폭력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는 처절한 몸부림으로.
경찰로써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싸움을 막아선 것 이외에는 할 수 없었지만, 부디 그가 폭력을 벗어나는 데 있어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언제든지 맨 앞에서 출동하고 싶다.
그렇게나마 이 땅 위에 끊이지 않는 신화의 굴레를 함께 조금이나마 끊어내는 그런 경찰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