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은 어떤 맛집 정보를 먹을까?

소멸시대 지역경찰 - 11화

by 푸르름

우리 집에서 나는 ‘미식가이자 대식가’로 통한다.

아닌가? 아, 그래도 친구사이나 경찰서 직원들도 나에게 묻는다. 요즘 맛있는 것 뭐 있냐고.


특히 나는 음식의 간을 중요하게 여겨 간이 맞지 않으면 그 식당은 절대 이용하지 않거나 아무리 맛집이라고 떠들어도 나의 맛 평점에서는 사라진다.

식당은 외관이 어떻든 노인분들의 ‘인증’이 붙은 곳은 무조건 맛집이다.


이것은 스트레스를 푸는 나만의 방식으로, 집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하던 고교시절부터 내려오던 나의 전통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나의 행복도 경찰 근무복을 입고 일터로 돌아가면 자동으로 이별하게 된다.

근무 중의 ‘식사’는 단지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일 뿐 맛으로 밥을 먹지 않는다.

덕분에 신림동 시절엔 고시뷔페를, 합격 후 교육생 시절엔 학식을, 수사과 시절엔 경찰서 자체 식당만을 고집해 왔다. 싸고 빨리 먹을 수 있는 곳으로만.


식판은 금속의 네모난 철판. 국이 달라도 희한하게 맛은 같다. 식단을 쭉 분석해 보니 격월로 메뉴는 매번 반복되었지만 메뉴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된장국, 콩나물 국. 미역국, 김칫국 무한 반복으로

창작의 메뉴가 아니라 메뉴판이라는 달력을 정해 놓고 무한 반복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식사시간은 맛의 음미가 아니라 동료들과 대화하며 전우애를 다지는 시간이었고, 우리는 그 시간만큼은 지켜내고자 온갖 힘을 썼다.


하지만 지구대로 오고 나선, 식사시간은 맛도 아닉고 전우애도 아니고 보다 더더 중요한 위치라는 것을 깨닫는데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경찰서의 식사시간은 식사가 아니라 한 차원을 더 넘어선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발령 둘째 날 점심, 팀장님은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라며 , 파출소 내 가장 유명한 감자탕 집으로 데려갔다. 맛집이라는 말에 나의 온몸의 세포는 팡팡 터지기 시작하였다.


예전 고향에서 실습할 당시 근무복을 입고 먹자골목만 가면 두려움반 짜증반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이들을 수없이 봐왔었다. 주인분 역시 범인이라도 잡으러 왔냐는 생각에 우리들을 보고 웃는 자는 없었다.


그런데 경찰 복장을 입고 어디 예약된 식당도 아니고 말도 안 되게 붐비는 곳을 가다니?



12시 조금 지나 도착하자 식당 안은 이미 문전성시였다. 작은 식당에 사람들이 다닥다닥 앉아 모두 똑같은 음식을 거의 똑같은 모습으로 하얀 연기 속에서 먹고 있었다.


예전에 보았던 중국영화의 한 장면하고 똑같았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11시부터 와서 이른 점심을 하고 일어나는 손님들이 많은 덕에 우리는 겨우 자리에 앉을 수 있았다.


팀장님은 유유히 사람들 틈을 비집고 기다란 식탁 한가운데 앉더니 감자탕 3인분을 시켰다.

“여기가 맛집이기도 하지만 정보 맛집이기도 해.”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잘 들어야 하니 귀를 활짝 열라고 하셨다.


대체 무슨 소리룰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옆 테이블에서 한 어르신이 말을 걸었다.

“아이고 신팀장 밥 먹으러 왔나. 그 저기 뒷골목 가게, 도박판 벌인다고 신고 들어온 가며.”


팀장님은 아무렇지 않은 듯 답하였다.


“그건 또 어떻게 소문이 났어요 가봐야 매번 아무것도 없어요”


“거기 주인이 cctv만 5개 설치해 놔서 정문으로 가면 절대 못 잡지. 그 카센터 뒤로 옆문이 하나 있는데 거기가 아마 문이 잘 안 잠겨서 대처 못하지 않을까 카센터가 박씨꺼잖아 박 씨는 자기 땅 맘껏 들어가라 하더라”


신팀장님은 별 반응 없이 알겠다고만 하고는 조용히 우리와 감자탕을 드셨다. 그리고 얼마뒤 야간에 우리는 거짓말처럼 불법 도박판 신고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감자탕 집에서 얻은 방향으로 조용히 들어가 ‘경찰입니다 신고받고 왔습니다’라며 3번 문을 두드리고 열어젖히자 미처 치우지 못한 채 수북이 쌓여있는 칩과 그 밑에 5만 원짜리 뭉치 돈다발 상자를 발견하였다.


“장 씨 아저씨 여기서 도박을 하면 어째요. 자, 현 시간 2024년 o월 o일 oo시 oo부로 5분을 도박죄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여러분은 변호인을……


나중에 알았지만 불법 도박은 사실 정말 잡기 힘든 신고였다. 영화처럼 대형으로 도박장을 차리는 게 아니라, 아는 사람이 가게 빌려주면 아는 꾼들끼리 5명 정도가 모여 도박을 하는데 문을 안 열어주면 10분 사이에 모든 흔적을 지우고 치킨을 먹고 있고 하면 그만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검거해 본 도박장이지만 감자탕에서 얻은 귀한 정보로 체포를 해봤다는 잠에서 아직도 짜릿한 경험으로 남아있다.


한 그릇의 감자탕 속, 한 숟갈의 작은 정보.


그야말로 점심 한 끼의 힘이었다.


또 다른 사건 해결의 사례로는 자장면집 도둑사건이 있다. 고속도로 입구 직전 수많은 차들이 다니는 길목에 위치한 흔하디 흔해 보이는 중국집이 있다.


반쯤 색 바랜 간판과 양옆에는 국밥집 피자집이 난립해 있는 도저히 맛집으로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이일 대 최고의 자장면집이었다. 특히 간짜장에 들어간 양파와 양배추는 일품 중의 일품이었다. 사람들은 그 먼 곳을 기어이 차를 끌고 와서 간짜장을 먹어왔고, 학생들도 눈길에 미끄러져가며 자전거를 끌고 오는 맛집이었다.


그날은 관내 자전거 도둑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날이었다. CCTV 사각지대만 골라서 훔쳐가는 도둑은 마치 우리를 놀리듯 일주일도 안되어 자전거들을 무분별하게 훔치고 있었다. 평소처럼 간짜장에 미니탕수육을 시키고 우리 면에 도둑놈이 나타났다며 한탄할 즈음. 서빙하시던 할머니가 지나가는 말로 우리에게 힌트를 주었다.


“며칠 전에 청년 하나가 자전거를 타고 왔다가 놓고 갔는데, 또 새 자전거를 타고 놓고 갔더라고 그거 어떻게 돌려주나”


우리는 그 순간 간짜장이고 뭐고 학생이 두고 갔다는 자전거를 보여달라고 하였다. 과연 얼마 전 신고가 들어온 자전거와 동일한 제품의 자전거가 주차장 구석에 놓여있었다 우리는 재빨리 cctv를 요청하여 다행히 학생의 얼굴을 딸 수 있었다.


철저하게 사각지대만 골라서 훔쳐 계속된 성공에 도취된 덕분인지, 이 집 간자장만큼은 포기 못한 덕분인지 우리에게는 천운의 순간이었다. 아마도 이 좀도둑은 이 집 간자장 맛을 못 버려 같은 장소를 또 가면 위험한 줄 알면서도 어리석은? 행동을 한 것 같다.



그 뒤로도 우리는 많은 맛집들을 다녔다 갈 때마다 사람들은 바글바글 했고, 우리를 만나도 개의치 않았다. 때때로 사람들은 아는 체를 하며 각자의 민원을 토로하기도 하고, 물건을 잃어버렸다며 해결책을 구하기도 하였다. 점심시간도 업무의 연장이었고 사건 수집과 해결의 장소였다


그러다 보면 점심시간이 단순히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을 넘어서 맛있는 정보를 캐고 나는 전달하는 작은 정보 미식가가 된 건 아닌지 착각들 기도 하다.


이곳은 시골이기에 맛집이 한정되어 있고 한정된 맛집에 사람이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래서 면사람들은 언젠가는 반드시 들리게 되는 식당 즉 맛집이 정해져 있었기에 이런 행운도 얻을 수 있던 것이다


파출소 사무실보다 맛집 식당 식탁이 더 많은 이야기를 안고 있을 때가 있다는 점이 시골 파출소에 묘미가 아닐까 싶다.


맛있는 한 끼. 그것만으로도 즐거움이 되는 날도 있지만, 그것이 사건의 실마리가 담긴 한 끼로 돌아올 때 그 만족감은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 같다.


나는 점심때면 또 고민한다.


오늘 점심은 뭘 먹지? 어딜 가면 맛있는 정보가 많을까?

오늘 점심엔 또 어떤 정보를 먹을까?



Tip

- 미식가로서 공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나로서는 짬뽕, 자장면 맛집을 추천할 수도 있지만, 관내 2개 존재하는 피자탕수육 맛집을 가보는 것을 적극 권장한다. 서울에서 단순히 먹으러 들릴 가치가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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