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일과 클래식(9) - 10.9 한글날 기념
추천곡 : 그레고리오 알레그리 ‘미제레레’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공연을 하였을 때 적잖은 충격을 받은 기억이 난다. 당시 미국 방송사에서는 해당 노래 가사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잘 몰라 괴상한 영어 자막으로 이를 대체해 내보냈다. 자막이 싫어 외국영화도 잘 소비하지 않는 나라에서 오빤 강남스타일을 번역하는 모습을 보자, 한글이 전국 방송을 타고 나가는 모습에 적잖이 흥미로우 면서도 언제 또 이런 광경을 볼 수 있을지 씁쓸했다.
그리고 나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2020년대에 들어서자 아카데미 작품상, BTS, 최근에는 오징어 게임까지 한글은 끊임없이 매체에 등장하며 전례 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KPOP조차 5년 내로 인기가 사그라 들것이라는 전망이 대다수였음에도 우리는 겪어보지 못한 문화 부흥기를 누리고 있다.
수많은 문화계 연예계 종사자 분들의 노고가 빛을 발한 면이 크지만 이 모든 것의 뿌리에는 언제나 우리만의 글 ‘한글’이 존재한다. 그 어느 나라보다 중국에 영향을 받아온 한반도이지만, 50년 만에 1000년간의 문화사대주의를 벗어던지고 우리만의 색을 찾은 데에는 한글의 공이 가장 크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은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백성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28글자를 만드니 익혀 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라며 백성을 위한 글임을 천명하였다.
그리고 현재 5000만 시민 모두는 말하고자 하는 바를 펴며, 짧은 기간의 경제성장 동안에도 우리 것을 바탕으로 수많은 국가의 좋은 문화를 빠르게 흡수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우리만의 뿌리가 전쟁과 식민지란 역경에도, 해방 후 금세 싹을 움틔워 세계로 문화의 꽃가루를 뿌렸으니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한글날을 기념하여 추천할 곡은 그레고리오 알레그리의 ‘미제레레’이다.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뜻을 가진 미제레레는 시편 51편의 부정을 저지른 다윗의 참회를 내용으로 한다. 너무나 아름다워 교황청이 시스티나 예배당이란 한정된 장소에서, 그것도 테네브레라 하는 전례 때에만 연주하게 한 교황청만의 전유물 같은 곡이다.
알레고리는 누구이며, 그가 작곡한 불후의 명작 미제레레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생인 알레그리(Gregorio Allegri, 1582~1652)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교차 지점에 속한 작곡가이다. 그는 9살 때부터 교회에서 성가 합창단원으로 활동했고, 22세부터 30세까지 조반니 나니노(Giovanni Maria Nanino)에게 사사했다. 38세에는 시스티나 성당의 합창단에 들어가 테너 파트를 맡았으며, 합창단을 위한 작품도 다수 남겼다. 46세에는 로마의 산토 스피르토 성당의 악장직에 올랐다. 이후 48세에 수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교황청 합창단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알레그리는 그저 그런 보통의 음악가였다. 그러나 그가 56세인 1638년 부활절을 앞둔 성주간을 위해 최고 역작인 '미제레레(Miserere mei, Deus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를 작곡하면서 일약 서양 음악사에 한 획을 긋는 음악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미제레레는 시편 51편의 가사를 합창으로 만든 장엄한 종교음악이다. 환상적인 아름다움에 전율케 하는 천상의 멜로디와는 엇박자를 이루는 가사 내용은 다윗이 바세바와 통정하고 난 뒤 참회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 외에도 성당을 압도하는 아름다운 천상의 화음에 두려움마저 느낀 폐쇄적인 교황청이 악보를 봉인해 외부에 공개된다든가 시스티나 성당 바깥에서 연주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시키며, 유출자는 누구든 파문한다는 엄중한 칙령을 공포했다. 일설에는 미사에 참석한 신도들이 집전 의식에 집중하지 못하고 미제레레 연주에만 몰입해, 인간의 마음을 현혹하고 어지럽힐 수 있다고 생각한 교황청이 연주를 금지시켰다는 주장도 있다.
이처럼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시간에만 들려주다 보니 미제레레의 대한 신비로움은 유럽 전역에 퍼지게 되었다. 이에 미제레레 악보가 정식으로 공개되기 전까지 이 음악을 듣고자 하는 수많은 음악 애호가들이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 몰려들었다. 그 유명한 괴테조차 이탈리아 여행기에서 이곡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았다
미제레레의 일화에는 모차르트 역시 빠질 수 없다. 열네 살의 나이로 아버지와 함께 시스티나 성당을 찾은 그는 단 두 번만 듣고도 이 곡을 암기해 단숨에 악보로 옮기며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 악보는 원본과 거의 일치했으므로 성당 합창단 관계자는 악보가 유출됐다고 생각해서 두려움에 떨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 된 교황 클레멘트 14세는 어린 모차르트의 재능을 높이 사 훈장을 수여하였고, 모차르트 역시 후에 미제레레 작품번호 85를 작곡하며 이를 추억했다 한다.
미제레레는 전체는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 반복된다. 5성부의 합창단과 4명의 솔로 그룹이 번갈아 부르며, 중간에 테너와 베이스들이 낭창하는 찬트를 삽입했다. 5성 합창과 4명의 솔로 그룹은 음을 주고받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마지막에 부분에서는 같이 어우러져 곡을 마무리한다. 마치 천국에서 천사들이 대화하는 듯 장엄하고 신비로우면서도 경이로운 이곡을, 율리우스 2세의 의뢰로 제작된 미켈란 젤로의 천장화 아래서 들었을 테니 그 누구도 극찬을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글날 우리와 조금도 연관이 없어 보이는 미제레레를 추천한 이유는 뭘까? 그것은 바로 미제레레의 아름다움보단, 폐쇄성이 마치 조선시대 ‘한자’를 보는 것 같아서다. 1638년부터 1870년까지 232년 동안 미제레레는 교황청 만의 전유물이었고, 그 아름다움이 유럽 전역에 소문이 났음에도 미사에 집중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만으로 일반에 공개를 막아버렸다. 세기의 곡이 교황청에 비밀주의로 결국 원본은 유실되어 버렸고, 1770년 악보가 공개되긴 하였지만 교황청은 1870년까지 시스티나 성당에만 불려질 것을 칙령으로 내렸다.
- 미제레레가 울려퍼진 시스티나 성당
수많은 가톨릭 인들이 미제레레를 듣고 얻었을 감동과 영감이 몇 백 년이나 특정 집단의 판단으로 갇혀버린 것이다. 이러한 배경을 알고 나니 한자를 아는 것을 상류층들의 전유물로만 생각하여 끝까지 한글 창제를 반대하고, 이후에도 언문이라 부르며 탄압하던 몇몇 사대부들의 행태가 겹쳐 보여 더 씁쓸했다.
다행히도 이제 미제레레는 바티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디서나 쉽게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를 통해 소수가 아닌 많은 이들이 미제레레를 연주하며 르네상스 음악의 아름다움과 종교음악의 경건함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시스티나 성당에 갇혀 있던 미제레레가 인터넷을 통하여 세계인에게 아름다움을 전파하듯, 우리의 문화도 한자 안에만 국한되지 않게 되자, 한글과 함께 우리만의 것으로 점차 독자적 문화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앞으로 이 문화 부흥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는 없다. 10년? 5년? 아니 어쩌면 바로 다음 달이면 흐지부지 되며 금세 사그라들 수 도 있다. 그러나 미제레레가 그 아름다움에 잊히지 않고 계속 불리어지듯, 한글이란 아름다운 뿌리가 존재한다면 우리의 문화는 잠시 꽃이 질지언정 다시금 봄이 오면 또다시 꽃을 피울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그렇게 된다면 과거 김구 선생이 말한 한없이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가 될 수 있을것라 믿는다.
글자에도 소리가 있다면 미제레레만큼 아름다운, 아니 우리에겐 미제레레보다 아름다운 한글을 기념하는 오늘. 이 문화 부흥기에 한가운데를 즐길 수 있음을 감사하며 두서없는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