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일과 클래식(8) - 10.3 개천절 기념
추천곡 : 하이든의 ‘천지창조’
열 개 하늘 천.
말 그대로 하늘이 열리는 날을 뜻하는 개천절은 민족의 시조, 단군의 고조선 건국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러나 흔히 알려져 있듯이 역사책에는 10월 3일이 단군이 태어났다거나 고조선이 건국된 날인지 나와 있지 않다. 다만 대종교라는 나철이 창교(혹은 증광)한 민족종교의 경전에 ‘10월 3일 강림하였다’는 구절을 근거로 하고 있을 뿐이다.
지식백과에 따르면 함경도 지역에서 음력 10월 국조 단군의 탄생일을 기념하고 오곡의 풍성을 기원하는 ‘향산제’가 1일부터 10일까지 열려왔다는 기록이 존재하기는 한다. 또 한 함경도뿐만 아니라 평안도에도 이와 비슷한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보아 대동강 이북지역에서 단군을 10월 초에 기념하여 왔다는 사실만을 추측하는 게 전부이다. 개천절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은 임시정부에서 음력 10월 3일을 국경일로 제정할 때부터였다. 이후 1949년 해방 이후에야 양력 10월 3일을 개천절이라 이름 지어 법적으로도 국경일로 자리 잡았다.
대종교에서는 개천이란 의미가 단군의 건국일이 아니라 환웅이 환인에게 명을 받고 태백산을 내려온 날로 보고 있다. 그러나 고조선 건국일인지, 환웅이 하늘을 열고 내려온 날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10월 3일은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함을 헌법에 명시한 만큼 임시정부부터 공식화된 민족이 열린 날이자 생일이다. 사상과 종교를 넘어서 우리에게 국가라는 개념이 탄생한 날인만큼 내‧외를 막론하고 이를 축하하였으면 한다.
우리에게 있어서 하늘이 열린 경하스러운 날, 이름과 뜻에 걸맞게 추천할 곡은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의 ‘천지창조’이다. 영국 시인 리들레이가 구약성경에 ‘창세기’ 부분과 존 밀턴이 17c지은 ‘실낙원’의 일부분을 통해 만든 서사시를 바탕으로 한 천지창조는 지구를 만든 7일을 표현한 오라토리오이다. 천지창조는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떤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기에 이곡을 추천하였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104곡의 교향곡을 작곡한 요젭 하이든(Joseph Haydn, 1732~1809)이 63세에 빈으로 돌아온 후로 교향곡 작곡에는 도통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마음과 머릿속엔 온통 오라토리오와 미사곡이라는 종교 음악으로 들끓고 있었다. 이는 하이든 이 두 번째 런던 여행 때 만난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공연을 접하면서 받은 신선한 충격에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경험을 통해 끝없이 만들어 낼 것만 같았던 교향곡에 대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당시 하이든이 남긴 메모에는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의 연주에 관해서 '지난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의 연주에는 885명에 달하는 인원이 참가했고, 연습에는 800명, 실제의 연주에는 2000명이 참여했다'라고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적잖이 충격과 감동을 받은 그는 독창·합창·오케스트라라는 대편성의 장대한 곡에 꽤나 깊이 매료된 듯하다.
이런 상황을 알기라도 하는 듯 빈의 음악 애호가 반 슈비텐 남작으로부터 오라토리오의 작곡 의뢰 동시에,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4번째 군주인 니콜라우스 2세 후작으로부터 미사곡 작곡도 명령받았다.
오라토리오란 중세시대부터 창작된 음악극 등을 기원으로 한 종교적 색채가 강한 음악이다. 당시 바로크 시대를 거치며 활발하게 작곡된 오라토리오는 서사가 존재하고 합창과 동시에 기악곡이 섞이며 규모가 커져왔다. 교향곡에 몰두하던 시절에는 오라토리오에 별다른 생각이 없던 하이든이지만 주변이 권하지 않더라도 그는 오라토리오로 이름을 알릴 만반에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종교음악에로의 진로 변경을 요구받는 것에 상관없이, 그 자신 스스로가 '내 이름을 세상에 남길 만한 음악을 작곡하고 싶다'는 생각에 오라토리오 '천지창조'의 영어 대본을 가지고 빈으로 돌아갔다. 총 3부 35곡으로 구성되어 있는 천지창조는 존 밀턴의 서사시 '실낙원'을 기본으로 만들어진 영어 대본을 반 슈비텐 남작이 맡으며 진가를 발휘할 수 있었다. 그는 독일어로 번역함과 동시에 작곡상의 상세한 흐름을 덧붙여 줬고, 이 덕분에 이를 건네받은 하이든은 곧바로 작곡에 돌입하였다.
오라토리오 분야에 있어서 이탈리아적 색채가 짙은 '토비아의 귀환'과 자신의 관현악곡을 편곡한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의 마지막 일곱 말씀'이 전부였지만, 하이든은 '천지창조' 창작에 3년이란 시간 동안 수없이 초안을 다듬고 매만지며 공을 들여 명작을 만들어 냈다.
하이든은 이 음악을 작곡하면서 깊은 성취감과 함께 큰 만족감을 느낀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이전의 어느 때보다 작곡에 몰두해 그의 내면으로부터 솟구치는 천재성을 오롯이 표현한 작품을 세상에 발표한다. 그러한 열정에 세상이 답하기라도 하는 듯 오늘날 하이든의 '천지창조'는 헨델의 '메시아' 멘델스존의 '엘리아'와 함께 3대 오라토리오로 꼽힌다.
'천지창조'와 '사계' 2개 오라토리오와 6곡의 미사곡으로 대표되는 만년의 하이든 작품은 오랜 세월에 걸쳐서 열정을 쏟아 왔던 교향곡을 비롯해 기악· 오페라·교회음악을 중심으로 한 성악의 모든 것을 집대성한 새로운 음악 세계를 열었다. 그리고 여기에 커다란 방점을 찍은 것이 바로 ‘천지창조’이다.
늘 새로움을 추구했던 하이든은 이 오라토리오를 통해 77년의 생애 동안 바로크 음악의 피날레를 장식하고, 고전파의 시금석이 되어준 동시에 낭만파의 싹을 틔우며 전진했던 음악가로서의 큰 족적을 남기며 지금까지 위대한 작곡가로 이름을 남긴다.
고전파로 분류되던 하이든에게 있어 천지창조는 고전주의 형식의 틀을 뛰어넘어 낭만파 음악의 전조를 여실히 보여주며, 그의 음악 성향을 재평가하도록 만든 그야말로 하이든에게 있어 천지창조라 여겨질 음악이라 하겠다.
이처럼 지극히 종교적인 곡이기는 하나, ‘천지창조’ 자체가 그리는 미적 표현은 개천절을 경하하기에 부족함 없이 빼어난 곡이다. 또한 역사적으로는 단군이 우리의 시작으로 여겨지는 만큼 ‘창조’라는 이름과 작품이 갖는 웅장함 역시 오늘에 어울리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끝으로 1시간 50분이 넘는 작품에 있어 한 부분을 추천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총 3부로 이루어진 ‘천지창조’ 중 1부 마지막 ‘하늘은 주의 영광 나타내고’에서 하이든 역동적인 대위법으로 마무리를 장식한다.
중창과 합창이 훌륭한 대비를 이루는 이 파트는 듣는 이로 하여금 하나님이 1일부터 4일 동안 창조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장엄하게 느끼게 하며 더 큰 감동을 자아낸다. 우리 한민족, 그리고 대한민국이란 근본이 하늘에서 열린 10월 3일 오늘. 하이든이 작곡한 위대한 오라토리오를 들으며 ‘하늘이 우리의 영광을 나타내었음’을 느끼는 개천절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