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시간으로부터 오는 포근함
어느 날 문득 과거에 매몰될 때가 있다. 그러한 순간은 꼭 마음을 먹고 준비된 이후에 찾아오지 않고 우연히, 전혀 예정되어 있지 않은 때에 찾아온다. 그럴 때면 그 시간은 더 이상 현재가 아니다. 빠져든 과거를 감각하며 그때의 오감이 되살아난다.
의도치 않게 빠져드는 곳이 과거라는 곳인데, 주로 꼭 필요한 사진을 찾으려 클라우드에 들어가서 스크롤을 내리다가 문득 멈추는 것이다. 지나간 시간의 한 순간을 꼭 붙잡고 있는 그 사진들은 보기에 퍽 아름답다. 물론 보기 좋은 경우에는 말이다. 하지만 주로 보기 좋은 것을 사진으로 남겨두지 않던가! 어쨌거나 그 시간은 내 의지로 붙잡은 시간인 만큼 빠져들기에도 좋은 것이다.
오늘도 클라우드에 들어간 것은 과거를 보려 함이 아니었다. 역시 스크롤을 내리다가 그 시간으로 들어간 것인데, 내가 가장 행복했던 시기 중 하나로 꼽는 대학교 막학기 가을이었다. 그 사진은 여수의 바다와 하늘, 산등성이에 붙은 마을 따위를 담고 있었다. 아빠 환갑 기념 가족여행으로 떠났던 곳이었다. 그때의 바람의 신선함과 바다의 향기, 청명한 하늘에 이은 기분 좋은 습도까지 그 사진들에 묻어난다. 가만히 빠져든다. 이미 그 순간 나는 2019년 10월에 있다. 조금씩 감각한다.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보던 섬들과 포구에 묶인 배들, 늘어선 식당 또는 술집에 멀지 않게 자리잡은 도심, 따뜻하게 노을지던 석양과 옅은 붉은 빛을 머금던, 그럼에도 푸르렀던 바다. 그리고 케이블카 안에서 사진을 찍고 찍어주며 수다스러웠던 우리. 그날은 내 인생에서 더 없는 쉼이었고 시원했던 날이었다.
이보다 더 강력하게 과거로 빨려들어가는 순간이 있다. 나는 붙잡아두고 싶은 순간의 소리를 녹음하는 일이 왕왕 있는데, 그 녹음을 듣는 순간이 바로 그때이다. 사진이 프레임에 갇힌 풍경으로 감각을 자극했다면, 녹음은 프레임이 전혀 없는 그 현장으로 나를 끌어들인다. 잡다한 백색소음, 그 시간에 은은히 풍기던 냄새, 내가 기록해두고 싶었던 소리까지. 그것은 심상한 것이면서도 심상치 않아서 온몸에 여운이 남는다.
어느 가을 저녁, 청계천에 앉아 그때의 소음을 녹음한 적이 있다. 발걸음 소리부터 사근사근 들려오는 주변 인파의 목소리, 시원한 소리를 울리며 흐르는 청계천의 소리에 더해 멀찍이서 들려오는 버스킹 음악소리. 내가 붙잡아 간직해두고 싶었던 것이 그 음악소리였다. 은은하게 들려오는 선율이 굉장히 매력적이라 나는 구태여 그 순간으로 들어갈 때도 심심찮게 있다.
과거를 감각한다는 것은 놀라운 능력이다. 아마도 인간만이 가진 특권이 아닐까 한다. 과거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우리는 지나온 시간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이루었고, 앞으로의 날들을 만들어 갈 테니까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과거를 감각하는 것은 퍽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잊고 있던 자신의 모습과 그때 내가 마주했던 것들을 새롭게 마주할 때 나는 다시 한 번 허물어진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자신의 벽을 허무는 과정이라고 했던가.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만큼 자연을 아름답게 하는 것도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