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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적휘적 Apr 12. 2021

구닥다리 사명감이 가지는 힘

아직 세상이 밝다는 증거

졸업을 앞두고 있던 시기, 진로에 대해 조금은 진지해져야 할 때 나는 출판사와 신문사를 놓고 고민했다. 사실 나는 내 인생에 취업이란 없을 줄 알았다. 당연히 졸업 전에 등단할 줄 알았고 적은 수입이나마 벌어들이며 작가로서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취업에 대한 준비도 일절 하지 않고 오로지 글만 써댔다. 소설을 쓰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공부했다. 연기도 배워보고 극작도 공부했다. 평일 공강 시간과 저녁 시간은 태블릿을 끼고 살았다(그땐 태블릿으로 작업을 했다). 주말에는 교회 가는 시간 외에는 책만 읽었다. 젊을 때 대형 신인으로 이름을 날리는 몇몇 작가들처럼,  나도 금방 뜰 줄 알았다. 현실감각이라곤 손톱만큼도 없었다.


그러는 동안 졸업할 시기는 다가왔고, 등단의 문턱에조차 다가가지 못한 나는 취업을 생각해야 했다.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이후 글과 관련된 직업만을 생각해온 내가 먼저 떠올린 건 편집자였다. 문학 편집자. 내가 좋아하고 직접 쓰는 소설을 편집하고 책으로 만드는 직업은 나름 매력 있고 의미 있어 보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직업이 기자였다. 소설은 아니지만,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글을 쓴다는 점에서 역시 의미와 매력이 있었다. 문제는 취업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현실이었다. 그 흔한 토익점수도 없었다. 중국어 전공자인데 중국어 관련 자격증도 없었다. 부전공 수업에 들어가기 전까진 곧잘 했는데, 그때 따둘걸 하는 약간의 후회가 밀려들었다. 어찌 됐건 소설로 먹고 살 가능성이 대놓고 0이었기 때문에 현실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출판예비학교에 넣을 자소서와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시작했고, 내가 살던 지역의 신문사 채용 공고를 살폈다. (다 떨어졌다)


지금은  좋게 편집자가 되어 출판사에서 일하면서(출판사인지 잡지사인지 가끔 헷갈릴 때도 있다) 기자에 대한 마음은 접은 것이나 다르지 않았다. 그러는 중에도 아주 마음이 사라지지는 았는지 내가 살던 지역의 신문사 채용 공고를 이따금씩 살피곤 했는데 정신없이 보낸 지난달에 채용 공고가 올라왔다가 마감까지 해버렸다. 뒤늦게야  사실을 확인한 나는 몹시(!!!) 아쉬웠다. 이런 시점에서 읽은 책이 『고보일보 송가을인데요』였다. 한겨레 기자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소설인  책은 기자에 대한 아쉬움에 불을 지피기  좋았다. 게다가 내가 학생 때부터 읽던 한겨레 기자라니, 동경심마저 들었다.


이 책은 기자 시점에서 사건을 바라봄과 동시에 취재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말진에서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송가을의 모습을 어쩐지 응원하게 된다. 마치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은 듯한 느낌이어서 읽히기도 퍽 잘 읽힌다. 그래서 일기 같은 느낌도 있지만 원래 남의 이야기 엿보는 게 그렇게 재밌는 거 아니겠나. 암튼 책장을 넘기며 가장 좋았던 것은, 그래도 아직은 사명감과 눈물을 가지고 일하는 기자가 있다는 것이었다. 기사 거리를 그저 아이템으로만 여기지 않고 사람을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이건 이 소설을 쓴 작가 자신의 눈물과 사명감이기도 하겠지.


다 좋은데 문장이 자꾸 눈에 걸렸다. 어딘지 아쉬웠다. 기자로서의 문장력은 당연히 좋을 터이다. 다만 드라이한 문장을 써오던 기자가 감각과 사유가 담긴 소설적 문장을 쓰려다 보니 힘이 들어간 느낌이다. 수사적 표현과 비문이 많고 왜 넣었는지 모를 단락도 종종 있다. 비유와 상징으로 넣은 것 같기도 한데 없었다면 더 매끄러웠을 것 같다. 소설로서의 가독성은 아무래도 떨어진다. 문장에 예민한 사람은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카타르시스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의 가치가 하락하는 것은 아니다. 기자에 대한 안 좋은 인식과 언론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가운데 이러한 작품이 세상에 나왔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자본의 흐름에 자신을 맡겨버리는 시대에 사명감이라는 단어는 구닥다리가 되어버린지도 모르겠지만, 그 구닥다리로 인해 누군가는 오늘을 살아낼 테니까. 사회란 거대한 벽 같아서 쉬이 변하지 않는 것 같지만, 아무리 노오력해도 바뀌지 않는 절대성을 지닌 듯하지만, 이들의 사명감과 열정과 눈물이 작은 반향을 일으킨다는 사실. 그것이 꼭 큰 변화를 일으키지는 못할지라도, 작은 생명은 구원할 수 있을 것이기에, 이러한 작은 구원이 모여 세상을 바꿀 것이기에, 이 책은 뜨겁다.


편집자가 되면서 기자에 대한 꿈은 접은 것이나 다름없었는데, 뽐뿌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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