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과 함께한 지 1,500일이 훌쩍 넘었다. 20대 중반이던 나는 어느새 30 어귀에 이르렀고, 삼순이는 벌써 5살이다. 시간의 흐름 속, 삼순이는 영원히 내 옆에 있어 주지 않는다는 불안감을 직면한다. 한정된 시간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입양 당시를 떠올리게 됐다. 삼순이를 만나기까지의 과정은 ‘동물권’을 인지하게 된 전환점이었다.
원래 강아지를 좋아했다. 도베르만, 시베리안허스키 등. 활동적이고 강한 내 성향과 잘 맞을 것 같은 대형 품종견을 특히 좋아했다. 어린 시절부터, 나중에 돈을 많이 모아서 강아지를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개를 ‘키우는 게’ 아닌 ‘반려한다는’ 결심이 서자 낯선 거부감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생명을 돈 주고 산다는 것. 그 자체가 불편하게 다가온 것이다.
그렇게 유기견 입양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특별히 펫샵 및 강아지 공장 등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어서 입양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과거의 나는 동물을 좋아만 했지, 동물권의 현주소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누군가 동물권을 주장하면, 인권도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사회에서 동물권은 나중의 이야기라고 할 때가 있었다. 무지한 상태로 만난 다양한 사연의 강아지들.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사진 속 강아지들은 입양을 한창 알아볼 때 센터에서 만났던 번식견 포메 부부다. 강아지 공장에서 3년간 교배를 강요받았던(말 그대로 강제다. 모견에게 발정 유도제를 먹이지만 그래도 교배가 되지 않을 경우 공장 주인이 물리적으로 수정을 시킨다.) 이 아이들은 사람이 지겹지도 않았나 보다. 처음 본 내게 쉽게 안겼고, 잠까지 들었다.
유기견 입양은 강요될 수 없다
펫샵을 소비한 사람들이 비난받을 때, 그들을 옹호하기 위해 자주 등장하는 문장이다. 이 문장이 지닌 함의는 동물을 반려하는 통로에 있어서, 누구나 자유로운 선택의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포메 부부견을 만나고 깨달았다. 그 자유로운 선택은 방종이 된 지 오래라는 것을. 펫샵에 있는 어린 강아지가 한 마리씩 ‘팔릴수록’,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모견 모묘는 또다시 강제 교배를 당하고, 출산을 반복한다. 펫샵에 대한 수요가 폭력적인 공급을 자극하는 구조다.
반려인구 1,500만 시대. 역설적이게도 동물을 ‘가족’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유기견 유기묘, 강아지 및 고양이 공장 문제는 곪아만 간다. 번식견 포메 부부의 모습은, 인간의 무지한 욕심과 잔인함을 드러내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
가족을 ‘구매’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불쾌감’이 점점 더 확산됐으면 좋겠다. 펫샵에 있는 귀여운 아가들의 모견은 지금, 이 시간에도 ‘강아지 공장‘에서 강제 교배 폭력을 당하고 있다. 이 무서운 사실을 직면하지 않더라도, 가족은 돈 주고 사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상식’이 되었으면 한다. 그렇게 되면 언젠가는 펫샵 소비도 줄어들 것이고, 강아지 공장도 없어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