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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Dec 16. 2020

유기견을 실험동물로?

'건강이법'을 아시나요

다양한 정치적 견해가 난무하고 여러 난항이 예상되지만, 이번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들의 공통점은 ‘힘의 분산’이다. 공수처법 개정안, 경찰법 개정안은 그간 검찰에 집중됐던 권력을 분산하여 궁극적으로 시민의 기본권이 더욱더 보장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셈이다. 또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던 수많은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고용보험을 적용받아 노동자성을 보장받게 됐다. 사회적 참사에 대한 특별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진상 규명이 철저히 이행됨으로써, 참사에서 빚어진 시민의 권리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 모든 법안의 본질은 동일하다. 비가시적 권력관계가 ‘선명히’ 존재하는 사회에서 가장자리에 놓인 이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느리지만 어찌 됐건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사회는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전진하고 있다.      


국회의사당의 전경

그러나 그 ‘나은 방향’에 여전히 동물의 권리는 포함되지 않는 듯하다. 조금씩 진보하는 과정에서 동물은 그 논의의 대상에 완전히 고려되지 않는 탓이다. 인간 중심의 세상이 그들의 ‘인간다운 삶’만 주창한 탓이다. 권력의 최전선이라 할 수 있는 국회의 시간은 한정적이다. 제한된 상황은 각기 놓인 정치적 진영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방향을 좇게 한다. 우리 사회에서 동물권을 주창하는 이들은 아직까지 소수에 불과하다. 다행히 이번 국회에서 동물보호법 개정 움직임이 있었다. 문제는 제한된 시간의 극히 일부만 투자한 듯한, 부실한 개정 내용에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이 발의한 이번 동물보호법 개정안은 유기동물이 함부로 동물 실험에 이용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실험동물의 공급처를 규정하여, 암암리에 불법적으로 진행되는 동물실험을 막겠다는 것이 그 취지인 것이다. 문제는 구체적 내용이다. 개정안을 살펴보면 “동물 실험 시설, 실험동물 공급자 등 동물병원 또는 축사 등에 해당하는 자로부터 동물을 공급받아 사용하도록 한다”라는 부분이 눈에 띈다. 동물실험을 투명하게 관리한다는 것의 방점은 온전히 불필요한 실험을 막는 데에 찍혀야 하지만, 이는 과정만 투명하다면 동물실험을 제한 없이 최대한으로 허가하겠다는 무서운 뜻을 담고 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동물병원이 실험동물의 공급자가 될 경우다. 동물병원은 치료, 호텔링을 전제로 맡겨진 동물들이 숱하게 유기되는 현장 중 하나다. 실제로 2016년에 불법 번식장을 운영했던 수의사가 모 대학교에 실험용으로 개들을 공급한 사건이 동물권 단체 <비글구조네트워크>에 의해 고발된 적이 있다. 이런 전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물병원을 공급처로 규정하는 것은 불쌍한 유기동물을 동물실험의 현장으로 내모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유기동물에 대한 법안을 제정했지만, 곳곳에서 동물 유기의 실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흔적이 보인다.      


더 나아가 해당 개정안은 개의 ‘사회적 위치’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반려 인구 1500만 시대, 개는 여전히 법적 지위가 ‘가축’에 속한다. 전국 곳곳에 여전히 ‘개농장’이 존재하는 이유다. 개정안에서 실험동물 공급자로 언급된 ‘축사’. ‘식용견’으로 길러지는 개농장의 개들이 관리자에 의해 실험동물로 공급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오랜 시간 인간과 사회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형성해 온 ‘개’의 권리는 매우 상징적이다. 이들이 실험동물로 쉽게 유통될 수 있는 구조는 개 외의 다른 가축 동물에겐 더욱더 무차별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왜 수많은 동물 중 개의 권리만 주장하냐는 시비와 딴지가 무지하고 무의미한 이유다. 모든 동물을 위해, 일단 개의 권리가 개선돼야 한다.      

사진 출처: 동물자유연대_ 개농장의 모습. 이곳의 아이들은 식용견으로 길러지지만 일부는 암암리에 동물 실험에 이용되기도 한다.



인간 사회는 느리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지금까지의 개혁이 소수에게 집중된 힘을 분산시키는 것이었다면, 앞으로의 개혁은 인간사회에 집중된 권력과 탐욕을 되돌아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동물권에 대한 활발한 논의와 관심이 그 구체적 결과물이 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정의로운 ‘힘의 분산’이다.     


이탄희 의원이 발의한 동물보호법 개정안의 명칭은 ‘건강이 법’이다. 건강이는 식용견 농장 출신으로 추정되며, 심장사상충 등의 질병을 앓는 와중에 교배 실습을 견디다 못해 한 달 만에 폐사했다.      


지금의 ‘건강이법’은 앞으로의 수많은 건강이를 만들 수밖에 없다. 무늬만 동물보호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진심을 다한 동물권 개혁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실습 교배에 동원되다가 한 달 만에 폐사한 건강이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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