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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Aug 10. 2021

내 반려견은 ‘식용견’이 아닙니다.

말복에 감상한 다큐멘터리 영화 ‘누렁이’ 리뷰

‘누렁이’ 보호자로서 다큐멘터리 영화 ‘누렁이’를 시청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했다. 안 봐도 뻔히 그려지는 개 도살 장면, 개농장의 처참한 실태를 직면하는 게 두려웠다. 그러나 또다시 찾아온 말복에 미뤄두었던 ‘누렁이’를 결국 시청했다. 전기 충격으로 개를 도살하는 장면이 나올 때 눈물을 쏟았지만, ‘완주’하고 나니 오히려 개 식용이라는 사회 현상을 냉정하게 바라보게 됐다. 개가 ‘가족’으로 불리는 사회에서 개 식용을 뿌리 뽑기 위해 필요한 메시지는 ‘더 이상 개는 먹어선 안 된다’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했다.      

  


영화 '누렁이' 중 한 장면
키우는 개, 먹을 수 있는 개

‘누렁이’ 다큐멘터리 중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 아닐까 싶다. 품에 안긴 요크셔테리어를 17년째 키웠다는 보호자는 개소주와 개고기를 판매하는 사업자이기도 하다. 그는 말한다. 개소주는 애완견이 아니라 ‘누런 황구’로 만든다고. 개고기가 비아그라보다 남성 정력에 좋다고도 덧붙인다. (실제로 개고기가 인간의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이 있다는 의학적 근거는 없다, 이를 다룬 의학적 논문도 당연히 없다. 오히려 개고기에서는 다양한 세균이 검출되는데, 그중 ‘이콜라이’라는 세균이 다른 육류에서 검출되면 식용 불가 판정을 받는다고 한다.) 그에게 개는 두 가지다. 먹는 개와 키우는 개. 품에 안긴 요크셔테리어는 키우는 개고, 그가 아무렇지 않게 냉동고에서 꺼내 옮기는 개고기는 식용견이 되기 위해 태어난 개인 것이다.      



모 대학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다큐멘터리 중간중간에 등장하며, 개고기의 효능에 대해 언급한다. 개고기만큼 고단백질의 음식이 없으며, 오랜 기간 개고기를 먹어 온 것은 우리의 고유 ‘문화’라는 점을 강조한다. 다큐멘터리 끝 부분, 그에게 던져진 질문. “혹시 강아지 키워 보신 적 있으세요?”.

 “키웠어요, 늙어 죽었죠. 14년을 키웠으니”.     



영화 '누렁이' 중 한 장면. 육견협회 관계자들이 생존권을 위해 시위하는 모습.

2017년 3월 24일, 표창원 전 의원이 대표 발의한 동물 사육환경 개선을 위한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동물학대 행위에 대한 형량이 이전에 비해 두 배가 늘어났으며, 동물학대 행위가 구체적으로 규정된 것이다. 동물 번식, 사육 등의 판매와 관련한 영업행위를 하려면 반드시 당국 허가를 받아야 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었다. 해당 다큐에는 육견협회가 동물보호법 개정으로 인해 개고기 사업이 위축될 것을 주장하며, 본인들의 생존권을 위해 ‘투쟁’하는 장면이 담겼다. 시위 현장에는 그들이 말하는 ‘식용견’도 함께했다. 굵은 쇠창살 안에 갇혀, 주위 소음에 벌벌 떨고 있는 개들. 대한육견협회 참가자들은 확성기에 외친다.

“저희가 키우는 식용견입니다! 애완견 하고는 완전히 다른 겁니다!”      



영화 '누렁이' 중 한 장면. 지자체 관리가 미치지 못하는 대부분의 개농장은 뜬 장에서 개를 사육한다.

반려 인구1500육박하는 지금, ‘식육견 산업 지지하는 이들의 논리는  하나다. 바로 키우는 개와 먹는 개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들이 먹어도 된다 주장하는 개들은 도사견, 진돗개, 진도믹스에 해당하는 ‘토종견이다. 토종견은 먹어도 되고, 외국에서 들여온 ‘수입 품종견 ‘애완견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논리를 꼬아보면, ‘애완견 먹어선   개다. 결국 이들도 일정 부분 ‘ 가지는 ‘반려견으로서의 사회적 의미와 존재를 부정하지 않고 있다. 육견협회 관계자는 말한다. “개의 지능은 애완견이  있어요, 식용견은  경험상 조금 둔한 걸로...” 다큐 영상에는 개농장의 현실이 그대로 비친다.  장을 밟고 있느라 짓무르고 시뻘겋게 변한 개들의 , 스트레스로 서로에게 입질을  한쪽 귀가 없는 , 아무 데나 방치되어 딱딱하게 굳은 새끼 강아지들의 사체. 그들이 말하는 지능이 높은 ‘애완견들도 똑같은 사육 환경에 놓인다면, ‘둔해질것이다. ‘키우는 개와 먹는 개가 다르다 주장은 틀렸다.     




벌써 5년을 함께한 나의 반려견

식용견과 반려견을 구분 짓는 행위와 인식은 비단 개고기 산업 종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5년 전 입양한 나의 반려견 누렁이 ‘삼순이’를 키워 보니 그렇다. “뭐 저런 개를 키워?”, “얘도 집 안에서 살아요?”. 삼순이와의 산책 현장에서 마주해야 했던 수많은 언짢은 언행들. 그들 눈에 삼순이는 진즉에 ‘식용견’이 되었어야 할, 혹은 일평생을 채 1m도 되지 않는 줄을 차고 짬밥을 먹으며 살았어야 할 존재인 것이다. 나는 산책 현장에서 수많은 언어폭력에 시달려 왔다. “저런 개새끼는 개고기용이지”등의 개 혐오자의 폭력은 오히려 쉽게 휘발한다. 내 감정을 오랜 시간 불쾌하게 만든 건, 다른 반려인들의 ‘견종 차별적’ 발언이었다. 앞에서 언급한 “뭐 저런 개를 키워?”, “얘도 집에서 살아요?”, 산책 현장에서 본인의 소형 품종견과 함께 산책을 나온 반려인들에게서 들었던 문장이다.      


모든 개는 동일하다

개 식용 문화가 잔존하는 한국 사회에 필요한 메시지는 ‘더 이상 개는 먹어선 안 된다’가 아닌 ‘모든 개는 동일하다’ 여야 할 것이다. 반려 인구 1500만 시대에도 식용견 산업이 작동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개를 ‘먹고 파는’ 이들 때문만이 아니다. ‘비싼 품종견’만을 반려견이라고 취급하는, 다수의 뿌리 깊은 인식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식용견 사업 종사자들의 ‘키우는 개와 먹는 개는 다르다’라는 주장을 전복시킬 수 없다. 토종견도 소형 품종견과 동일하게 아픔을 느끼고, 인간의 사랑을 원하며, 동물로서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얼마 전 민법 개정을 통해 동물은 물건이 아닌, 동물로서의 법적 지위를 얻었다. 1500만 반려인 시대, ‘견종 차별’을 인지하는 것이 개 식용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작점이 될 수 있다.     


모든 개는 동일하므로, 개 식용을 멈춰라. ‘먹어도 되는’ 개는 존재하지 않는다. ‘먹어선 안 될’ 개를 먹고 있을 뿐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누렁이' 감상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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