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내려와 있어. 우리가 사랑하는 그 섬 말이야. 첫 책을 쓸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섬. 수많은 추억을 남긴 아름다운 섬. 어쩐지 가끔은 쓸쓸한 섬. 주말엔 사람들이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어느새 고요히 쓸려가는 섬. 아름다운 바다로 둘러싸여 있지만 어쩐지 그래서 외롭게 고립되어 있는 섬.
난 이곳에 나를 가두는 일을 오랜 시간 좋아해 왔어. 혼자 계획 없이 내려와 생각에 잠기는 일을 거리끼지 않았지. 서울에서 일상을 보내다 보면 모를 내 마음속 한편의 감정이 이곳에만 오면 꿈틀거리며 자꾸 고개를 내미니까. 그것들을 만나는 게 가끔은 찢어질 듯 괴롭지만 그래야만 치유되는 것들이 있으니까.
조용한 책방, 엘피 카페들을 다녔어. 누군가의 애정으로 가꿔진 공간들엔 여행객들의 방명록이 남겨있었지. 한 장씩 꼼꼼히 읽어보았어. 여행으로 들뜬 마음부터 시작해서 육지에서의 실패로 좌절한 마음, 이유 없이 살아가는 일이 어려운 사람들까지. 그 마음들이 하나하나 전부 내 것 같아서 눈물이 났어. 나도 방명록에 글을 적었어. 2024년 10월 3일, 개천절에 적은 글이었지.
**
먹구름이 드리운 제주의 개천절.
개천절은 단군께서 최초로 고조선을 세운 역사적인 날이다.
나라를 세우는 것만큼이나 개인에겐 무언가를 시작하는 일이 어렵고 뜻깊다.
나의 경우엔 많은 고민 끝에 익숙한 일터를 떠나 이직을 결심했다.
새로운 터전에서 또 나만의 나라를 만들어가야겠지. 조용하지만 절대적으로.
올해 처음 감기와 달리 오래 낫지 않는 병에 걸렸다.
어떻게 보면 이만하면 다행이지, 어떻게 보면 왜 하필 나야?라고 묻게 된다.
아파보니 모든 우선순위가 뒤바뀐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도 아프면 최대로 유능할 수 없다.
아무리 행복한 사람도 아프면 마음껏 행복할 수 없다.
건강이라는 굳건한 기반 하에 우리는 각자 사랑하는 나라를 짓고 그곳의 주인으로서 군림하며 살아가야겠지.
그곳이 아무리 작은 한 뼘짜리 나라일지라도.
모두 너무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달리다가도 오늘처럼 쉬어갈 수 있는 용기를 지녔기를.
어떤 일이 있더라도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길.
**
너와 나의 생은 우리의 나라를 보다 평온하고 풍부한 곳으로 만들기 위한 여정이겠지. 난 너의 성공보단 건강을 부지런히 바라고 있어. 기반이 튼튼해야 무너지지 않는 성을 지을 수 있을 테니까. 언제나 그랬듯이 난 시간의 힘을 빌려 많은 것들을 건강하고 당차게 해쳐나갈 거야. 네가 자랑스러울 수 있도록 걸음걸음 신경 쓰며 살아갈게.
제주 조천읍 북카페 도토관에서,
사랑하는 네 친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