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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은 Nov 19. 2024

애써 삼키는 것이 많아질 때면

안녕. 정말 오랜만에 네게 편지를 써. 그동안 이사도 하고 회사도 옮겨 바쁘게 보내느라 그랬던 건데, 내가 좀 소홀했지? 어떤 일이 있었든 난 스스로를 최우선으로 두고 네게 가는 여정을 소홀히 하면 안 됐던 건데 아쉬움이 남는다. 올해가 가기 전까지는 꼭 네게 자주 편지할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들도 들려주고 변화무쌍한 이 시기를 함께할게. 네가 지켜보고 있다는 마음으로 한 발자국씩 소중히 나아갈게.


이곳은 어느새 겨울이 찾아왔어. 이번 가을은 오래 따스하다며 좋아하던 찰나에 겨울은 눈인사 한번 없이 고요히 와서는 긴 시간 곁에 있겠다고 말하더라. 결국 지켜지지 못한 의미 없는 약속들이 차가운 계절 사이로 스쳐가. 여러 번 겪어도 늘 새로운, 몇 번이고 찾아오고 지나갈 나의 겨울들. 견디는 일은 힘겹겠지만 언젠간 또 서서히 봄이 와서 마음에도 또다시 꽃이 피어날 거야. 있잖아. 시린 계절을 미워하지 말자.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고 봄을 준비할 수 있게 하는 시간인데 어떻게 겨울도 소중하지 않을 수 있겠어.


올해는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또 제자리네. 추위를 유독 많이 타 그럴 일 없을 줄 알았는데 여름보다는 겨울을 더 좋아하게 됐고 집에서 의미 없이 흘려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어. 특유의 활기찬 에너지는 잃고 이름 모를 감정에 잠식되곤 했어. 누구라도 붙잡고 나를 왜 이렇게 만들어놨냐고 따지고 싶지만 그럴 대상은 없고, 결국 그 화살은 나를 향해 돌아가던 아픈 시간들. 그렇게 애써 삼키고 삼켜 편지로 쓰지조차 못하는 말들. 달갑지 않은 끝을 결국에 받아들이고 삼켜내는 일. 삼키다 보면 금방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지나가겠지만 마음 한편엔 구멍이 나있을 나.


이젠 더 이상 그 구멍을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아서 오늘은 상담센터에 가봤어. 무언가 해결하고 싶다기 보단 그냥, 요즘 좀 힘들었잖아. 아프고 나서 마음도 불안정하고 내 자리가 아직 없는 곳에서 적응하면서도 힘겨웠으니까. 이런저런 얘기를 털어놓았더니 돌아왔던 선생님의 말이 많이 위로가 되더라. 결국 그렇게 될 일은 어떻게든 일어나고 사라지고, 또 아무리 걱정해도 당신의 자리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 이 기회에 나를 들여다보고 더 많이 사랑해 보자고. 마음도 공부하고 키워가는 거라고. 선생님은 50대에 암에 걸리고 인생을 다르게 보게 되셨대.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남의 시선 때문에 억지로 이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라는 말에 움찔하더라고. 요즘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으니까.


가끔 상상에 잠겨 이야기를 쓰는 일을 참 좋아했었는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편지하는 일도 애정했었고 무언가 새롭게 배우는 것도 참 신나 했었지. 이제 그런 일들을 작게나마 다시 시작해 보려고. 피아노나 명상하는 법도 배우고 책 읽는 모임에도 가서 좋아하는 소설에 대해 떠들 거야. 다시 활기차게 아픈 상태에서도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워갈 거야. 함께해 줄거지? 난 늘 네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 사랑해.


11월의 어느 날,

네 친구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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