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 한봄의 작당모의 上

by 가은

혜연은 오직 봄에만 심장이 뛰었다. 나뭇가지 끝에 붉은 꽃물이 차오르고 향긋한 바람이 살랑이는 그 계절엔 분명히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봄의 얼굴엔 투명한 생기가 돌았다. 손가락 마디마디마다, 팔을 타고 흐르는 혈관마다 생명의 흔적이 물씬 풍겼다. 혜연이 어렸을 때, 누구나 두 뺨이 발그레 물들어 싱그럽게 미소 짓는 혜연을 보면 봄을 위해 태어난 사랑스러운 아이라고 불렀던 날들이 있었다.


중학생이 되던 무렵의 초 여름날 등굣길에서 혜연은 처음 쓰러졌다. 6월 중순, 초여름으로 접어들던 날의 아침 햇살이 내리쬐는 도로 위에서 갑작스럽게 숨을 가쁘게 내쉬다가 의식을 잃었다고 했다. 차들이 지나다니는 길 한복판이었던 탓에 조금만 엇나갔어도 위험했다고, 무사한 게 천만다행이라고 사람들은 말했지만 혜연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처음 쓰러진 날엔 응급실에 실려갔고 그다음번엔 어디가 아픈지 정밀검사를 받았다. 심박수가 정상 수치의 절반이라 몸에 피가 돌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을 땐, 심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원인을 찾으려고 또 다른 검사를 받아야 했다. 어떤 병원에서도 심박수 이외엔 문제가 없다는데 자꾸만 시든 꽃처럼 쓰러지는 이유를 알 수 없어 모두가 답답했다.


곧이어 계절이 차례대로 지나갔고 모두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봄만 되면 거짓말같이 심장이 뛰고 아픈 구석이 사라졌다. 꽃이 차츰 지고 햇빛이 내리쬐는 여름이 찾아오면, 혜연의 생기는 잦아들기 시작하더니 또다시 몸을 가누기가 어려워졌다. 숨 한번 제대로 쉬는 일조차 버거워진 몸으로 병원에서 살아서 누워있는 것조차도 기적이라고 했다. 또래 아이들이 학교에 갈 때 혜연은 창 밖만 바라보며 눈이 내리는 겨울이 끝날 때까지 꼬박 세 가지 계절을 버텨야 했다. 어서 하루빨리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일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어린 소녀는 너무 일찍 기다리는 일에 익숙한 어른이 되었다.


다시 걸어 다닐 수 있는 계절이 오면 심장 질환에 탁월하다는 병원을 수소문해서 찾아다녔다. 여전히 그 누구도 원인을 모르겠다고 했다. 대신 어떤 의사는 혜연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도 되겠냐고 물었고, 또 다른 이는 사계절이 아닌 나라로 이민 가시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혜연은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지구가 둥근 탓에 일 년 내내 봄인 곳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었다. 꼬박 육 년을 내내 앓는 동안 이상 기후 때문인지 봄은 점점 짧아졌다. 봄에는 새로운 의사를 만나느라, 나머지 계절에는 생명을 연장하느라 늘 병원에 있던 혜연은 점점 이렇게 말하는 횟수가 잦아졌다. 약 냄새가 진동하는 이곳에만 머물기엔 봄이 아쉬울 정도로 짧아지고 있어. 해가 지날수록 혜연의 심장은 점점 고장 나 심장이 뛰는 속도가 눈에 띄게 더디어졌다. 이 정도 속도로 악화된다면 몇 년 남지 않았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혜연은 그래도 모르니 계속 치료를 받아보자는 부모님에게 말했다.


나 이제 살고 싶어. 한 계절이라도 사람답게 살아보고 싶어.


엄마는 유일한 딸인 혜연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미안하다고 연신 같은 말을 반복했다. 아무 걱정 말고 자신만 믿으라고 딸에게 습관처럼 말하던 아빠는 뒤돌아 숨죽였다. 크게만 보이던 사랑하는 이들의 작은 모습이었다. 혜연의 완강한 의지에 가족은 이제 지긋지긋한 병원에 가는 일을 그만두고 대신 봄을 만끽하기로 했다. 네 말대로 한 계절이라도 제대로 살아보자, 혜연아. 행복해보자, 혜연아. 매일 밤 엄마는 잠든 혜연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스무 살이 되던 그 계절은 혜연의 마지막 봄이었다.


퇴원하고 맞은 첫 봄, 5월 초 한봄의 그날은 맑고 화창했다. 집 앞 공원에 홀로 산책 나온 혜연은 눈앞 풍경에 와아, 소리를 내며 감탄했다. 뭉게구름이 떠다니는 푸른 하늘과 아래 길가를 따라 분홍빛 벚꽃이 수놓아진 풍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그 속엔 나들이를 나온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그들 손에 쥐어진 솜사탕, 연인들의 사랑이 맺힌 눈빛들이 있었다. 그 사이에서 혜연은 행복했다. 한 걸음이라도 제대로 걸을 수 있음에, 갈비뼈 사이 가득 숨을 내쉬고 뱉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혜연은 한참을 걷다가 벚꽃나무 아래 벤치에 앉았다.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꽃가루가 휘날리자 스치는 바람과 꽃내음을 온몸으로 기억하고 싶어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여유로웠던 적이 언제였더라, 혜연은 어릴 적 건강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심장이 고장 난 건 아무래도 꽃가루 때문일까? 아주 어릴 적엔 꽃가루 알레르기가 심해서 밖에 돌아다니지 못했었다. 초등학생일 때까지만 해도 재채기를 하느라 온몸이 벌게지고 키도 작은 탓에 아기원숭이라고 놀림받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앳된 몸이 어엿한 아가씨로 점차 변하던 그즈음부터 정반대가 되었다. 꽃가루를 맡을 수 있는 계절이 되어야만 심장이 예전처럼 뛰었으니 말이다.


벚꽃이 만개한 강가에서 혜연은 있는 힘껏 숨을 쉬었다. 꽃가루들이 오래 몸에 남아 겨울까지 버텨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눈을 떴다. 탐스럽게 피어난 벚꽃가지가 혜연의 눈높이까지 만개해 유난히 눈에 띄었다. 혜연은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 손바닥만 한 꽃가지를 똑- 하고 떼어내 코에 갖다 대었다.

그때 누군가 속삭였다. 부드러웠지만 짐짓 화난듯한 목소리였다.


너 나를 죽인 거야?


아주 가까이서 들리는 음성이었다. 혜연은 두리번거렸지만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또다시 누군가가 말했다.


내가 이 계절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꺾어버린 거야?


자신이 꺾은 꽃가지였다. 혜연은 순간 놀라 꽃가지를 떨어트렸다. 이제 내가 헛소리까지 듣는 걸까? 심장이 덜 뛰면 뇌에 산소가 부족해져 이상해진다던데. 그래, 이게 다 봄에만 사는 탓이지, 혜연은 체념하고 답했다.


미안해. 나는 네가 없는 계절은 살 수가 없거든. 한번 가까이서 맡아보고 싶었어.

그럼 내 소원 하나 들어줘. 그럼 용서해 주지.


꽃가지는 아주 단호한 목소리로 요구했다. 꽃가지에도 표정이 있다면 아주 심술 난 얼굴일 것이 분명했다.


봄을 늘려줘. 우리가 살아가기에 이 계절은 너무 짧거든. 벌과 나비의 불만도 요즘 이만저만이 아니야.

봄을 늘려? 나도 그런 방법이 있으면 얼마든지 늘리고 싶어.

간단해. 봄을 찾아서 다리미로 쭉 피면 돼. 그럼 그해 봄은 거의 두 배가 되거든. 지금은 누군가 봄을 괴롭혀서 잔뜩 쪼그라든 게 틀림없어.


그 말을 들은 혜연의 눈은 동그래졌다. 무생물과 말을 섞고 있는 지금이 꿈이라 해도, 아님 자신이 단단히 미친 것이라 해도 한 번쯤은 믿고 싶었다. 심장이 유난히 뛰어 설레는 이 계절을 주름진 셔츠를 다리듯이 필 수 있다니. 내게 주어진 마지막 봄을 무한정 늘릴 수 있다니, 혜연은 상상만 해도 벅차 서둘러 물었다.


봄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데?

꿈에서. 네 꿈에서 필 수 있어. 너는 봄에만 살아있는 아이잖아.


꽃가지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 자신만만한 말투로 대답했다.


너, 나를 알아?

당연히 알지.

어떻게?

다 아는 수가 있어. 봄바람이 네 소식이 딱하다고 알려줬거든. 그런 말은 곧 소문이 되니까. 이미 돌고 돌아 이 공원, 아니 이 세상 꽃들 중 너를 모르는 애는 없을 거야. 다들 너를 응원하고 있다고! 우린 봄을 늘리고 싶은 같은 편이잖아. 인간들 다 봄을 좋아한다고 해도 황사니, 미세먼지니, 꽃샘추위니, 꽃가루가 날린다느니 해서 진심으로 영원하길 바라는 사람은 한 명도 없거든. 근데 넌 진심이잖아. 안 그래?


혜연은 순간 울컥한 마음으로 고개를 있는 힘껏 끄덕였다. 봄에만 심장이 뛰는 것 같다는 말을 주변 사람들에게 처음 했던 날이 떠올랐다. 그게 어떻게 말이 되냐고, 몸이 아니라 네 마음이 힘든 게 아니냐던 안쓰러운 눈빛들, 여러 병원에 전전하다가 지쳐버린 엄마 아빠의 줄어든 말수 같은 것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마다 내 마음은 어땠더라. 괜찮아, 괜찮아, 다음 해에는 사계절을 살 수 있을 거야. 이번 해만 버티자. 이번 여름만, 가을만, 겨울만. 이런 말들을 스스로 되뇌면서도 한 번도 괜찮았던 적이 없었다. 꽃가지가 너와 나는 같은 마음이니 한 편이라고 속삭이던 순간, 혜연에게 여태 그런 존재가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렁그렁한 눈으로 꽃을 바라보며 방법을 묻자, 꽃가지는 차례대로 방법을 알려주었다.


일단 오늘 밤 넌 긴 꿈을 꿀 거야. 내가 봄비한테 귀띔해서 네게 그 꿈을 보내줄 거거든. 너는 어느 모르는 집 안에 있을 거야. 그럼 그 집을 뒤져서 봄을 찾아. 그리고 다리미로 봄을 힘껏 다려줘. 그거면 돼. 그럼 올해 봄부터는 봄이 겨울과 여름을 앞뒤로 삼켜 길어질 거야. 어쩌면 영원할지도 몰라. 이건 너만 할 수 있는 일이야. 넌 특별한 아이니까!

내가 봄을 어떻게 알아봐? 봄이 어떻게 생겼는데?


혜연은 다급히 물었지만 꽃가지는 봄바람이 훔쳐가듯이 날아갔다. 마치 힌트는 여기까지고 앞으론 네 몫이라는 듯이.


집에 돌아온 혜연은 곧바로 침대에 누웠다. 산책은 어땠냐고 물어오는 엄마의 애정 어린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고 방에 들어왔다. 아직 해도 채 지지 않은 오롯한 오후의 낮이었다. 말똥한 정신을 애써 잠재우려 눈을 감아도 보고 양을 세기도 했다. 그래도 잠이 오지 않아 옆자리에 있는 책의 몇 구절을 읽기도 했지만, 어째 평소보다 심박수가 훨씬 빨라져 도저히 잠에 들 수 없었다. 이렇게 심박수를 끌어 쓰다가 봄을 채 보내지 못하고 죽는 거 아니야? 걱정을 하다가도, 아니야, 내게 봄이 달려있잖아. 모두를 위한 일이야, 찾아서 늘리면 돼,라고 스스로 다독였다. 순간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창가 사이로 바람이 살랑였다. 곧이어 풀 냄새 배인 촉촉한 봄비가 내리자 혜연은 스르르 잠에 들었다.


눈을 뜨자 큰 방이었다. 그 방은 꽃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꽃내음이 진해서 코가 마비될 정도였다. 혜연은 조금은 작은 듯한 흰색 프릴이 달린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개나리와 민들레로 만들어진 샛노란 꽃신을 신고 있었다. 이마를 만져보자 목련과 벚꽃이 수놓은 머리띠를 하고 있었다. 꿈이라고 하기엔 모든 촉감이 너무나 생생했다. 새로운 공간과 자신의 옷차림이 어색해 두리번거리던 혜연은 아차, 이럴 시간이 없지, 자각하고는 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방엔 평범한 물건들이 있었다. 냉장고, 가스레인지, 세탁기, 침대, 책상, 의자와 같은 것들. 이곳 어딘가에 봄이 숨어 있을 테 였다. 혜연은 빠르게 냉장고 문을 열어보았다. 작은 페트병 생수 세 병과 오렌지 말고는 특별한 게 없었다.

수,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