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버키터스(Bucketus) 13기를 시작하는 날이었어. 5년째 운영하고 있는 책제작 모임인 그 공간을 얼마나 사랑해 왔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너는 너무나 잘 알고 있겠지? 모두 3개월 동안 자신만의 소장용 책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삼삼오오 모였어. 자신만의 이야기를 기꺼이 나눌 수 있는 용기와 함께 낯선 곳에 발을 디딘 소중한 사람들. 그들의 반짝이는 눈빛들을 마주할 때면 늘 새롭게 행복했고, 어제도 덕분에 넘치게 행복한 하루였어.
버키터스에서는 글로서 평등하게 소통하고자 하다 보니 나이와 직업을 공개하지 않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어. 첫 모임에서는 주어진 키워드들 중에서만 선택해서 질문하고 알아가는 프로그램을 기획했어. 어제의 모임에서도 벌써 5년째 모임을 운영해 온 배테랑답게 익숙하게 차례대로 물었어.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나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 지난 취향들 같은 것에 대해서. 그리고 마침내 내가 질문을 받을 차례가 되었어. 누군가 내게 물었지. 마음의 호수에 작은 돌멩이을 던지듯 물둘레를 생기게 하던 물음표로. 지금 가은님의 꿈은 뭐예요?
곧바로 떠오르는 대답이 없어 당시엔 횡설수설했어. 음, 마음에 드는 책을 한 권 더 내고 싶고 시나리오도 써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본업에서도 충실해서 가능한 한 높이 올라가면 좋겠죠? 가보기 쉽지 않을 나라들 인도나 몽골 같은데 있잖아요, 그런데도 가보고 싶네요. 아!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아주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싶어요, 같은 말들을 쏟아냈어. 하지만 왠지 모르게 집에 돌아오는 길 내내 그 질문이 머릿속을 헤집었어. 그리고 생각했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었던 시절도 있었는데 왜 이제는 어려워진 건지. 더 이상 무모하게 꿈꿀 수 있는 시절은 시간이라는 바람을 타고 날아간 건지.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꿈이 옅어지고 사라진다는 말과 같은 건지.
돌아보니 나는 운이 좋게도 이미 지난날들의 꿈들을 이룬 사람이더라. 오랜 시간 추구하는 가치를 녹인 나만의 브랜드를 갖고 싶다는 꿈을 꾼 적이 있었어. 그 결과로 사람들이 모두 각자의 빛나는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장인 버키터스를 만들었고 최소 5년은 넘게 운영해 보자라는 결심도 이룬 셈이 되었어. 또 좋은 소설을 써내서 자주 가던 광화문 교보문고 매대에서 볼 수 있었으면 있었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꿈도 이뤘어. 너무나 간절하기에 애달프기까지 했던 시간들을 꿋꿋이 버텨내면서 말이야. 어릴 적 드라마를 보면서 비행기를 타고 먼 나라로 출장을 다니던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던 꿈도 어렴풋이 이뤘어. 모두 너무나 기쁜 순간들이었지만 달콤한 솜사탕같이 손에 닿고 품을수록 녹아 어느새 익숙해지고 또 당연해지더라.
누군가에겐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꿈을 이룬 이후보다 꿈을 꾸던 시절이 어쩌면 더 찬란하고 행복하지 않았나 생각을 해. 꿈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눈빛부터 다르니까. 확고한 나만의 목표가 있다는 게 때론 숨 막히게 간절해서 힘들지만 또 내일을 열심히 살아가게 하니까. 꿈을 이루고 나서는 그저 꿈이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걸까 생각하니 조금은 서글퍼졌어. 원하던 대로 책을 한 권 내고 브랜드를 만들고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었다고 해서 이제 꿈이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은데 말이야. 그래서 이제 누군가 현재의 내 꿈이 뭐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기로 했어.
늘 꿈꾸는 사람이 되는 것이 나의 평생의 꿈이에요. 지금 당장은 잠시 길을 잃어 꿈이 없을 수 있어도 꿈꾸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이 있기에 괜찮아요. 지금은 그저 어떤 꿈을 꾸고 싶은지 고르는 과정일 거예요. 10년이 흘러 내가 네가 되어도, 또 10년씩 흘러도 난 또다시 꿈꾸는 사람이 될 거야. 무언가를 가르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으면 어떻게든 해낼 거고 나누고 싶은 사람이 되면 나누며 살아가겠지. 난 너의 가능성을 너무나 많이 믿으니까 널 믿고 꿈꾸며 살아갈게.
꿈을 꾸기 위해서는 취향과 경험이 필요해.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선택하고 소소히 깨우치며 살아가자. 거창하지 않더라도 꿈꾸는 삶을 살기로 해. 얼마 남지 않은 올해도 그리고 다가올 선물 같은 내년에도. 이만 줄일게.
2024년의 끝자락,
사랑하는 네 친구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