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접힌 자국

by 가은



며칠 전이 입춘이었다는데 봄이라기엔 너무 추운 나날들을 살아내고 있어. 분명 이번 겨울엔 그렇게 춥지 않을 거란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그 말이 무색하게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치고 눈보라가 휘날리는 제대로 된 겨울이 찾아왔네. 이맘쯤이면 눈부신 햇살대신 왠지 모르게 두려운 어둠이 더 오래 자리 잡아서일까. 조금은 무기력해지고 많은 일에 대한 의욕을 잃곤 하지. 혼자만의 시간이 유난히 많아지는, 이따금 낯선 얼굴로 생각에 잠기는 일이 잦아지는 시절. 그래서 네게 깊은 마음을 담아 편지하기 좋은 계절.


어린 시절에는 작은 것으로도 하루종일 신나게 놀고는 했었어. 초등학교 시절, 좋아하는 남학생에게 학을 천마리 선물하겠다며 호기롭게 밤새 종이접기를 했던 기억이 있어. 천 마리는커녕 백 마리를 겨우 넘었었지만, 꼼꼼하지 못한 성격 탓에 학이 제각각 달리 생겼었지. 마음에 들지 않아 애써 그 종이를 펴서 다시 접으려고 해 봐도 예쁘지 않게 남은 접힌 자국들이 거슬렸어. 아무리 입김을 호호 불어 펴봐도 그 자국들은 없어지질 않더라. 나로 인해 태어난 한 마리의 학은 결국 미운 자국들을 잔뜩 가진 채 살아가야 하더라.


비슷한 시기에 친구들과 놀이터에 가서 모래성을 쌓고는 했어. 물을 묻혀서 모래를 단단하게 한 다음 이런저런 모양으로 만들고 신나 했었지. 하지만 그 성은 너무나 연약해서 다음날 다시 찾아가면 언제 있었냐는 듯 형태가 사라지곤 했어. 그땐 바람이 불면 흩날리고 또 사라지는 모래의 성질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매일 기도했었지. 내일이 되어도 이 성이 그대로 있게 해 주세요. 제발 하루만요. 아무리 애원해도 어김없이 정성을 쏟은 성은 사라지고 모래는 다시 모래로 돌아갔어. 그렇게 누구에게도 선물할 수 없고 영원할 수 없는 것이 되었지.


어쩌면 마음에도 질감이 있는 걸까. 그 시절 종이나 모래는 마치 내 마음 같다는 생각을 해. 나의 마음은 팔랑이는 종이 같기도 하고 때로는 흩날리는 모래 같기도 하니까. 있잖아. 나는 한번 접힌 자리는 미련하도록 오랜 시간 간직해야 하는 종이나, 한 움큼 잡고 주려고 해도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 같은 마음을 갖고 살고 있어. 그런 마음의 질감을 수차례 실감해야 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면 금세 서글퍼져.


누군가의 마음은 이보다는 단단하고 유연한 목재나 비단 같은 것일 텐데 나는 왜 여러 번 접히고 또 접힌 마음을 간직하며 살아가야 하는 걸까. 늘 미소 짓는 밝은 얼굴 뒤로 꾸깃한 마음을 숨기며 단단한 척 살아가는 삶은 얼마나 외로운 것일까.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 주고 함께해 줄 사람이 있을까. 그전에 접히고 흘러내리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줄 준비가 되는 순간이 올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무는 밤이야.


오늘은 네게 희망찬 다짐을 하기보단 그저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었어. 네게는 그래도 된다는 사실 하나로 더 버틸 수 있으니까. 접힌 종이로도 한 마리의 어여쁜 학이 될 수 있고 누군가는 모래 한 움큼에도 사랑을 쏟고 성을 짓는다는 사실을 기억할게.


어느새 2월을 시작하며,

네 친구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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