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하염없이 깜빡이는 커서를 응시하며 생각에 잠긴 지 한참이 지난 후에야 인사를 건네. 때로는 한 장의 편지에 담아낼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어떤 언어로 전달하면 좋을까, 생각에 잠긴 채로. 솔직히 나는 요즘 행복하지만 종종 서글프고, 자주 웃음이 나지만 가끔은 표정을 잃고 마는데. 스스로가 하염없이 자랑스럽다가도 이기적인 모습에 실망하고, 잡히지 않는 미래를 걱정하며 털어놓고 싶은 마음을 꼭 움켜쥐고 혼자 삭이고 마는데. 그중 어떤 것을 골라야 할까. 고민하고 고민하다 오늘은 무수한 마음 중 용서와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고르려고 해. 오랫동안 쓰고 싶었지만 차마 쓸 수 없어서 기다렸던 이야기를 길었던 겨울이 지나 이제야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예감이 들어서.
예전엔 말이야. 오랜 시간 그리움을 품고 살았다면 그 어떤 기억도 용서할 수 있는 줄로만 알았어. 그리움엔 용서와 직결되는 힘이 있는 줄로만 알았어. 누군가는 그럴 수 있는 대담함이 있겠지만, 이번에 알게 되었듯 나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더라. 어떤 아픈 기억은 그리움 속에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생되고 또 재생되길 반복해서 마음에 흉을 남기더라. 만지면 말랑하고 부드러워야 할 마음에 상처가 난 그 자리만 유독 모래에 긁힌 자국처럼 거칠고 까끌한데. 그리움에 지쳐 다시 전과 같은 마음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순간, 그 까끌함은 마음 전체를 다 집어삼켜서 덧나고 말았지. 그리움은 그리움일 때 아름다울 뿐, 더 이상 처음의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더 깊은 슬픔에 빠지고 말텐데.
그리움에도 거리가 필요하듯이 어쩌면 용서에도 절대적인 거리가 필요한 것일지도 몰라. 용서의 대상이 더 이상 곁에 없을 때 비로소 용서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몇 년 전 나에게 일방적으로 연을 끊자고 통보해 충격을 안겨준 친구를 이제는 희미해진 기억으로 용서하고, 한때는 전부였다가 이제는 저 멀리 나의 삶 건너편에 살고 있을 그대를 이제는 용서할 수 있는 것처럼.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 예전처럼 그들을 곁에 두고 한 치의 의심 없는 온전한 나의 사랑과 지지를 줄 수는 없는 것처럼. 가끔 문득 그리워할 수는 있겠지만, 용서를 가능하게 하는 건 절대적인 거리인 것만 같으니까.
긴 시간 부인했지만 이제는 용서와 그리움 모두 한 뼘 정도의 거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했어. 시간이 지났고 시절이 저물었고 마음이 접혔으니까. 사실 내가 정말 그리운 건 나 자신을 다 꺼내 보여주어도 괜찮다는 한때의 믿음, 오늘처럼 서글퍼질 때 털어놓고 기댈 수 있는 존재, 찬란할 것만 같은 미래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일 뿐. 힘든 시절 날 쓰러트리고 좌절하게 하던 것들을 진정으로 용서하고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
이 글을 끝으로 이젠 일정하고도 영원한 거리를 두기로 하며 모두를 용서하기로 해. 삶의 건너편에서, 혹은 다른 우주에서, 내가 없는 세상에서도 행복하길. 좀 더 좋은 어른이 되길. 그리고 스스로를 용서하려고 해. 가끔은 어리석고 충동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나를, 그리움으로 접히고 접혀 구겨지고 까끌한 마음을 오래 간직하는 미련한 나를 무엇보다 용서해야지. '그때 왜 그랬어, 그럴 수밖에 없었어?'라는 책망 대신 '그땐 그랬지만 넌 결국 더 좋은 방법을 찾을 거야'라는 용서의 말을 스스로에게 해줘야지.
그 시절의 너도 가끔 나를 용서해 줘. 지금의 내가 이렇게 중심을 잡으려고 애를 쓰지만 가끔 용서할 수 없는 모습으로 서있어도 결국 너는 날 그리워하고 용서할 것이라고 얘기해 줘. 너와 나 사이엔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있으니까. 용서도 사랑의 마지막 방식 중 하나겠지. 사랑해. 한 주 고생 많았어.
2025년 3월의 시작,
네 친구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