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끝에서 정말 오랜만에 네게 편지를 해. 기나긴 여름 동안 마음도 일상도 이리저리 부유하며 정신이 없었지 뭐야. 이번 여름은 유난히 무덥더라. 이따금 장대비가 퍼붓고 이내 개어버리곤 했는데, 비가 그친 하늘은 새파란 도화지에 솜을 몇 점 흘려놓은 듯 선명하게 맑았지. 나의 여름도 그랬어. 눈부시게 행복해하다가도 금세 서글퍼지며 무너지곤 했어. 여름은 원래 그런 계절이잖아. 뜨겁게 달아오르다가도 한차례 소나기가 지나가면 이내 먹먹해지고, 그래도 그 뒤엔 맑고 선선한 공기가 찾아와 하루쯤은 숨을 돌리게 해 주니까. 그 힘으로 또 살아내는 계절이니까.
몇 해 전이었을까. 그때도 이런 무더운 한여름날이었어. 친구가 용하다는 점집이 있다며 사주를 보러 가자고 했어. 사주는 여러 번 본 적이 있어서 대수롭지 않게 따라갔는데, 매서운 눈매를 가진 아주머니가 내 눈을 오래 들여다보더니 이렇게 말했어. 아가씨 사주는 촛불이네. 은은하고 작은 촛불. 그래서 마음도 여리고 쉽게 흔들리며 혹시나 꺼질까 늘 노심초사하며 살겠지. 그런데 그 촛불이 세상을 비추고 있네. 그 작은 불빛 하나가 어둠을 밝혀주네. 아가씨는 잘될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 안에 환한 빛줄기 하나가 스며드는 듯했어.
알고는 있었어. 내 일주가 정유일주라 촛불이라고 부른다는 걸. 하지만 그 사실이 늘 못내 서운했지. 나는 왜 태양이 될 수 없는 걸까. 눈부시게 모두를 내리쬐며 압도적인 힘을 가진 그런 태양은 왜 될 수가 없는 걸까.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늘 그 자리에 단단히 서 있는 나무나, 묵직하게 제자리를 지키는 대지 같은 것이 되고 싶었던 적도 많았는데 말이야. 사소한 바람에도 이따금 흔들리고 아파하는 건 내가 촛불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걸까, 그런 생각이 들면 흔들림 없는 태양이나 나무 같은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도 했지.
스스로가 촛불인 게 싫어서 화려한 불꽃놀이처럼 살고 싶던 시절도 있었어. 잠시 모든 이의 시선을 붙드는 눈부신 불꽃처럼 화려한 사람들 곁에 머물고 싶어 하고 빛나 보이는 것들에 매달리기도 했지. 하지만 불꽃놀이는 순간의 아름다움일 뿐, 어두운 밤을 오래 비추는 건 결국 작은 불빛이라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어. 작더라도 오래 따뜻하게 머물러줄 수 있는 촛불 같은 소소한 행복과 다정함이 때론 누군가를 살게 하니까. 은은하지만 끝내 꺼지지 않는 불빛으로 세상의 한편에 서 있고 싶어서 촛불로 태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얼마나 뜬눈으로 샌 수많은 밤이 지나야 했는지 너는 알고 있겠지.
그래서 지금은 이런 바람을 품게 돼. 내 안의 연약하고 흔들리는 마음을 함께 지켜줄 수 있는 사람들이 내 곁에 한결같이 있어주기를. 또 이 불빛으로 세상을 조금은 더 따뜻하고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기를. 내가 가진 것을 나눌 용기와 마음속 다정함을 겉으로 꺼내어 전할 수 있는 따스함이 내 삶에 오래 깃들기를. 화려하지 않아도 숨 고르며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안전한 곳에서 나의 촛불이 흔들림 없이 빛나기를. 그 빛이 언제고 편히 놓일 수 있는 자리를 찾아가기를.
이 시절의 나는 아낌없이 흔들릴게. 대신 너는 그곳에서 은은하고 아름답게 빛나고 있어 줘. 나의 연약함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줘서 좋은 글로 태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 이번 여름도 살아내느라 수고했어. 다음 계절은 조금 더 부드럽게, 조금은 더 단단하게 빛나자. 그럴 수 있도록 더 자주 편지할게.
2025년 여름의 끝자락에서
네 친구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