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의 이야기 - end

by 강규리

*자살 관련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Y는 갑작스럽게 떠나게 되었다. 퇴원 일정이 당겨져 예정보다 이른 퇴원을 하게 되었다. Y가 떠나는 날 아침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병동은 늘 그렇듯 같은 시간에 깨어났다. 불이 켜지고, 복도에서 카트 소리가 났다. 사람들은 하나씩 침대에서 내려왔고 평소와 같은 순서로 아침이 진행됐다. 달라진 건 Y의 침대 위는 깔끔해지고, 병동 문앞 가방이 하나 있었다. Y는 짐이 많지 않았다. 한 벌의 옷과 병동에서 쓰던 작은 물건들. 열심히 꺼내먹던 간식들까지. 하나씩 가방에 넣으면서도 Y는 평소처럼 말을 걸었다. "언니, 저 진짜 나가네요." 그 말은 웃으면서 했지만 목소리는 조금 조용했다.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잠깐 고민했다. 축하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지만 쉽게 꺼내지 못했고, 그 말이 너무 가벼워 보일 것 같았다. "잘 됐다." Y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깐 웃었다.


퇴원 절차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간호사와 몇 가지 확인을 하고, 보호자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전에 건네주는 종이 한 장, 편지였다. 어리지만 성숙한 아이의 마지막 인사였다. "언니, 꼭 저 가면 봐야 해요!" 신신당부를 하는 Y의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병동에서는 이별이 크게 준비되지 않는다. 대부분 조용히 끝난다. Y는 마지막으로 프로그램실 쪽을 한 번 봤다. 우리가 색칠놀이를 하던 테이블, 보드게임이 놓여 있던 자리, 사람들이 앉아 있던 의자들. "언니." Y가 나를 불렀다. "언니도 나가면 진짜 잘할 거예요."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이 격려인지, 믿음인지, 아니면 그냥 위로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Y는 그 말을 아무 생각 없이 한 것 같지는 않았다. "여기서도 잘 버텨왔잖아요." Y는 그렇게 덧붙였다. 잠깐의 침묵이 있었다. 병동 복도에서는 누군가 걸어가는 소리가 들렸고, 멀리서 간호사 목소리가 들렸다. 세상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언니, 나가서도 가끔 생각할게요." 그 말은 크게 특별하지 않은 문장이었는데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리고 Y는 병동 문을 나갔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조금 조용해졌다. 프로그램실은 그대로였고, 사람들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Y가 앉아 있던 자리는 비어 있었다. 나는 그자리를 잠깐 바라봤다. 병동에서의 관계들은 대부분 오래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짧게 지나가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Y가 그랬다.


Y의 편지내용은..."생귤탱귤 감귤!!" Y 특유의 장난스러운 말이었다. 그 위에는 작은 그림도 그려져 있었다. 웃고 있는 얼굴이었다. 편지를 읽다 보니 이런 문장이 있었다. "여기서 지내면서 언니가 웃는 모습보다 우는 모습을 더 많이 본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나는 그 문장에서 잠깐 멈췄다. Y는 밝은 사람이었지만 남의 표정을 꽤 오래 보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내가 숨기려고 했던 것들을 생각보다 많이 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언니가 웃는 걸 좋아해." , "언니가 이 편지를 읽을 때쯤에는 지금보다 훨씬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말도 적혀 있었다. 언젠가 시간이 더 흐르면 병동에서 함께 보낸 시간들이 지금처럼 무겁게 느껴지지 않을 거라고. "언젠가 이곳을 떠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도 있었다. 편지 마지막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언니도 하루빨리 사회로 돌아가길.", "그리고 예쁜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았으면 좋겠다."


편지를 다 읽고 나서도 나는 한동안 종이를 접지 못했다. 종이에는 Y의 글씨와 작은 그림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병동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오래 머물지 않는다. 서로의 삶을 깊이 알기도 전에 떠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관계는 짧고, 이별은 빠르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오래 남기도 한다. Y는 병동에서 가장 먼저 나에게 말을 걸어온 사람이었고, 마지막에는 이렇게 편지를 남기고 떠난 사람이었다.


나는 그 편지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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