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의 퇴원
*자살 관련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B의 퇴원 이야기는 갑작스럽지 않았다. 이미 오래 병원에 있었고, 언젠가는 나갈 사람이라는 걸 모두 알고 있었다. 그래도 막상 날짜가 정해지자 병동의 시간이 조금 달라 보였다. "나 다음 주에 나갈 것 같아." B는 그렇게 말했다. 평소처럼 담담한 말투였다. 축하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바로 축하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짧은 시간 동안 쌓인 정들 때문이었을까.... B는 그걸 알고 있는 것처럼 웃었다. "여기 오래 있었잖아. 이제 슬슬 나가야지." 농담처럼 이야기했지만 그 말 안에는 병동에서 보낸 시간들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B가 떠나는 당일날, 작은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접혀 있는 편지였다. 크게 특별할 일은 아닌 것처럼 자연스럽게 건넸다. 종이를 펴 보니 첫 줄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To. 규리
B의 글씨는 생각보다 단정했다. 편지에는 이런 말들이 적혀 있었다.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좋아진 것 같다는 말. 본인이 생각한 것보다 더 좋은 사람이라는 말.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 그리고 이런 문장이 있었다. "자꾸 자책하고, 해치려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잠깐 멈추게 됐다. 병동에서 그런 말을 직접적으로 듣는 일은 많지 않았다. 자해하고 싶다는 말,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내가 B에게 듣는 마지막 당부였다. 자해는 하지 않기. 그런데 B는 조심스럽게도 하지만 분명하게 그 말을 적어 두었다.
편지의 마지막에는 이런 말도 있었다. "설령 준비가 되지 않았더라도 걱정하지 말고, 나갈 수 있을 때 나가요. 준비가 되면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어요. 수능도 대학도, 밖에서 분명 행복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마지막은 "계속 응원할게요. 화이팅" 편지 끝에는 날짜가 적혀 있었다.
2025년 10월 27일.
B는 그날 병동을 떠났다. 특별한 작별 인사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간호사분들께 인사를 하고, 사람들에게 짧게 인사를 하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갔다. 물론 나는 준비가 되지 않았던 듯하다. 의도치 않은 눈물이 나를 괴롭게 했었다. 병동에서는 대부분의 이별이 그렇게 조용하게 끝난다. B가 떠난 뒤에도 프로그램실 테이블은 그대로였고 보드게임도 그대로 있었다. 퍼즐 상자도 같은 자리에 있었다. 달라진 건 나의 그냥 허전함이었을까. 달라진 건 한 자리였다. 그래도 가끔 그 편지를 다시 읽었다. 병동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스쳐 지나가지만 어떤 말들은 오래 남는다. B가 남긴 말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