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관련 내용이 포함됩니다.
<수능 D-29, 개인 의원>
그날이 있고 3일 후, 여전히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학교에서도, 독서실에서도... 오늘은 다니던 병원에 가는 날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공황장애 증상으로 다니게 된 정신과. 익숙한 공간이었고, 늘 하던 질문이 오갔다. 늘 하던 질문이었을 뿐인데... 눈물은 홍수가 나듯 쏟아졌고 불안감은 멈추지 않았다.
억누르고 있던 나의 상태를 토해내듯 뱉어내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잠시 기록을 보더니 응급실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수능을 앞두고서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분명 아무렇지 않던 내 모습이 상담과 동시에 5살 아이처럼 우는 모습만 보였다. 울음을 멈추지 못한 나에게 간호사분은 과호흡이 온 나에게 안정제를 먹였고, 자해흉터와 상처로 지저분한 내 손목을 말없이 잡았다. 소독과 붕대는 정해진 순서로 진행되었고, 질문과 위로는 없었다. 그 침묵 사이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응급실에 가야만 하는 상황에서 수능을 앞두고 있다는 말은 상황을 바꾸지 못했다. 그렇게 병원을 나서며 보게 된 휴대폰에는 한 달도 남지 않은 수능 디데이가 선명했다.
<수능 D-29, 응급실에서>
집에 돌아온 나는 곧장 응급실로 향했고, 마음은 무거웠다. 응급실로 향하는 시간은 조용했다. 아무 말 없이 운전하는 엄마의 옆에서 조용히 창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응급실의 밤은 낮처럼 밝았다. 불이 꺼지지 않는 공간에서 시간은 느리게 갔다. 줄지어 놓인 침대 사이에서 정신응급환자였던 나는 A3 격리실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 누운 채로 천장을 가만히 보았고, 빠른 발걸음, 급하게 오가는 의료진의 말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누구도 조용하지 않았다. 대신 아무도 내 이야기를 길게 묻지는 않았다. 필요한 질문만 오갔고 나의 답변은 기록으로 남았다. 생각은 많았지만 정리할 필요는 없었다. 이곳에서는 생각보다 상태가 더 중요했다. 그날 응급실에서는 몸이 먼저 불려 나갔다. 피를 뽑고, 엑스레이를 찍으며 모든 기본 검사를 받았다. 침대에서 내려와 복도를 지나고 다시 침대로 돌아오는 일이 반복됐다. 시간은 벌써 자정을 넘은 새벽이 되었다. 천장을 보고, 벽을 보고, 다시 천장을 보았다. 응급실 침대 옆에 앉은 우리 엄마는 한참을 울었다. 내 옆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로.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숨이 자주 끊겼다. 나는 엄마의 모습을 본 채로 옆으로 누워 있었다. 손을 잡지도, 말을 걸지도 않았다. 위로를 건네기에는 너무 늦었고, 설명하기에는 이미 많은 것이 지나가 있었다. 그 눈물은 나 때문이었고, 그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밝은 조명 아래서 누워 한참 기다린 후에야 정신과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자해충동과 자살충동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고질병 같은 경우인 걸까... 차분한 당직 의사 선생님의 질문에 나는 간단히 대답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 수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몇 차례 질문과 함께 손이 바빠졌고, 이후 진료는 금방 끝났다. 나의 상황은 분명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