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무너진 그날

by 강규리

*자살 관련 내용이 포함됩니다.


<수능 D-51, 반복>

나의 하루는 늘 같은 자리에서 시작했다. 사람이 많은 출근길 지하철을 타고 학교로 가는 길, 여전히 날씨는

뜨뜻미지근... 학교가 끝나면 독서실로 가 책상 앞에 앉았다. 이미 여러 번 접힌 문제집의 모서리, 에어컨 바람으로 시원하다 못해 차가운 공기. 아침이든 밤이든 그 풍경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스스로에게 위안을 삼았다. 다들 이렇게 힘들어한다고, 아직은 쉴 수 없다고. 집중이 되지 않아도 자리를 떠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버티는 시간들이 곧 성실함이라고 착각하면서. 그러나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동안 내 영혼은 다른 곳에 가있었을지도 모른다. 문제 하나를 붙잡고 있으면 시간은 계속 지나갈 뿐 해결할 순 없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조금씩 내가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쉬고 싶다는 생각은 나에게 죄책감과 함께 찾아왔다. 겨우 남은 시간 51일. 머릿속에선 남은 시간을 떠올렸다. 그 앞에서는 몸이 보내는 신호도, 마음의 비명도 모두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였다. 나는 계속 앉아 있었다. 사실 이미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 자리를 떠나는 순간 모든 걸 포기하게 될 것만 같아서, 실패한 사람이 될 것 같아서.


<수능 D-32, 그날>

수능은 어느새 한 달을 남겨두고, 나는 어느 때처럼 하루를 시작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하루였고, 그날도 다름없이 책상에서 시간을 보냈다. 다만 내 안에서 무언가가 완전히 끊어졌다는 점이 달랐다. 여태 버텨온 시간들이 무용지물이었고,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해야 할 일도, 남은 시간도, 앞으로의 계획조차도 그 순간에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죽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잡아먹었다. 충동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오래 쌓여 있던 마음이었고, 계획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갑작스러웠다. 내가 그날 느낀 자살충동은 더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선언에 가까웠다. 저녁 10시 41분 비 내리는 날, 독서실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온 시간. 집에 오면 잘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나는 그대로 침대에 누워 울었다. 고단한 하루 끝에 떨구는 눈물이었을까. 복잡한 머릿속에서 여러 방법을 떠올렸다. 목매달기, 칼로 동맥 끊기, 강으로 뛰어들기, 약 많이 먹기… 무언가에 이끌린 듯이 옥상으로 올라갔던 기억이 난다. 비 맞은 생쥐 꼴로 멍하니 서있었고, 태풍이 휘몰아치듯 생각은 혼란스러웠다. 죽어? 말아? … 죽기엔 너무 무서웠고, 살기엔 현실이 너무 괴로웠다. 난간에 기대어 수백 번을 생각했다. 어째서인지 제발로 내려와 집에 오니 경찰이 찾아왔다. 죽지 못한 내가 실망스러웠고 신고자를 원망했다. 내가 살아남은 그날, 안도감은커녕 죽지 못한 사실이 나를 더 무너지게 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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