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가을은 무너짐을 숨긴다

by 강규리

열아홉의 가을, 나는 조용히 무너졌다. 소리도 없이.


실은 그 열아홉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그 무너짐은 갑작스럽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끝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괜찮은 척 넘기던 날들이 쌓이고, 아무렇지 않은 듯이 버틴 시간들이 길어졌을 뿐이다. 그 해의 나는 어쩐지 차가운 가을바람에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듯 무너졌다. 그래서였을까.


무너진다는 말은 대개 큰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내 경우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떠한 일도 나를 아프게 하지 않았다. 그게 문제였다. 나는 머리를 움켜쥐고 고민하고 고뇌했다. 하루는 어제와 같았고

내일도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절망적이었다. 그 평범함 속에서 나는 조금씩, 아주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을 것이다. 나에게 괜찮다는 말은 어느새 습관이 되었고, 나의 주변 이들에게는 괜찮냐는 질문이 습관이 되었다. 버틴다는 감각은 나에게 언제나 필요한 존재였다. 힘들다고 말하기엔 나는 너무 멀쩡해 보였고, 도움을 요청하기엔 스스로를 설득할 이유가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을 버텼다. 그 열아홉의 아이를 나는 계속 방치했다. 오늘만 넘기면 괜찮아질 거라고, 조금만 더 참으면 나아질 거라고•••


어느 날부터는 숨이 가빠졌고, 이유 없는 눈물이 잦아졌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지쳐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하루를 시작했다.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보다 그렇게 사는 편이 편했기 때문이었다. 수능이라는 큰 사건을 앞두고서 내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도 싫었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은 길어졌지만 집중은 점점 얇아졌다. 문제집의 글자들은 의미를 잃었고, 페이지를 넘기는 손은 마치 기계처럼 움직였다. 나에게 쉬고 싶다는 마음은 곧 나약함처럼 느껴졌다. 지금 쉬면 안 될 것 같았고, 내가 지금 멈춘다면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걸었다. 비록 제자리걸음이었을지라도 그 당시 나는 계속 걸었다. 정확히 말하면 멈출 수 없었다. 멈춘다는 선택지는 스스로에게서 지워버렸다. 잠깐 숨을 고르는 일조차 미래를 포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보내오고 있는 몸과 마음의 신호는 지금은 참아야

할 때라며 덮어두곤 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걷는 일은 나를 앞으로 데려가지 않았다. 그저 제자리에 묶어둔 채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었을 뿐이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그저 앞으로만 가는 줄 알았고, 멈추는 법을 배우지 못한 열아홉의 이야기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