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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연 Jul 09. 2018

침묵할 용기




“야, 카페에서 노래 부르는 사람 진짜 이상하지 않아? 왜 저러는지 진짜 이해 안돼.”  


그리 친하지 않은 A와의 대면이었다. 분명 방금까진 나 포함 세명이었는데. 안정적인 삼각형구도를 나와 친한 B가 화장실을 빌미로 깨트렸다. 흔들리는 동공을 애써 힘 주어 가다듬던 찰나, A는 이어폰을 낀 채 노랫말을 흥얼대던 옆 자리 남자를 흘기며 말했다.


“어. 그니까. 완전 이해 안됨. 아니 주위 시선도 의식 안하나? 세상 혼자 사는건지 뭔지. 저런 사람들 진짜 딱 싫어.”  


질색을 하는 내 반응에 A는 신이나 말을 계속 이어간다. 그와는 대조되게, 나는 곧 자기혐오의 늪에 빠져든다.   


고백하건대, 그와 같은 사람에 대해 내 평생 단 한순간도 생각해 본 적 없다. 남 이사 카페에서 노래를 하건, 랩을 하건, 춤을 추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애초에 이것이 논의의 대상이 될 것이라 고는 상상도 못했을 만큼 A가 던진 그 물음은 나에겐 너무도 생소한 문장이었다. 그런데 그 문장에 대고 나는 대답했다. 마치 이것이 내 삶의 경험과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을 한껏 축적시킨 논제인 듯이. 그렇게 그 순간 나는 ‘카페에서 노래하는 사람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 으로서 정의됐다.  


이번에도 역시 이 이상한 성격이 문제가 됐다. 어색함이라면 치를 떠는 나이기에, 레이더망 내에 퍼진 불편한 기류를 감지한 순간 그 공기는 곧 내 신경 속 깊이 침투해 사고회로를 정지시켜 버리고 만다. 머리가 돌아갈 새도 없이 입이 먼저 작동한다. 그리곤 인과관계 전무한 일련의 문장들을 나도 모르게 종알종알댄다. ‘생각은 사치다. 무슨 말이 되었든 어서 뱉어내.’ 이것이 나라는 인간을 위해 본능적으로 구축된 위험 감지 시스템이다.   


이러한 시스템 아래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일이다. 살면서 직면하게 되는 위험의 순간들이 하나 둘 늘어갈수록 나를 둘러싼 명제의 가짓수는 점점 늘어난다. 개중엔 참인 명제도 분명 있겠지만, 곳곳에 거짓인 명제들이 즐비하게 자리잡고 있어 나중엔 나조차 혼란스러워진다. 무엇보다 가장 참을 수 없는 점은 거짓말을 하는 나의 모습이다. 아니, 거짓말이라고 하기엔 말에 어폐가 있다. 나조차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여하튼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이 황당한 행동들을 지속하는 스스로를 볼 때마다, 나는 매 순간 끊임없이 자기혐오를 느낀다.   


여기서 오는 자기혐오는 단순히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나에 대한 그것은 아니며, 그보다 한결 더 복합적이다. 우선, 붙임성 있는 성격을 가진 것도 아닌 주제에 한 순간의 어색함도 용납하지 못하는 괴짜스러운 성격에 대한 혐오, 다음으론 곧바로 정직한 답을 내어 주지 못할 만큼 듬성듬성 설켜져 있는 허술한 주관에 대한 혐오, 마지막으로 마땅히 침묵해야 할 것에 침묵하지 못하는 비겁함에 대한 혐오다. 이러한 삼단 혐오를 끊임없이 거치다 보면, 나의 자아는 마침내 콩알처럼 작아져 버리게 된다.  


그렇다면 그만두면 되지 않겠느냐. 대체 누구를 위해 그다지도 괴상스러운 연극을 지속하는 것이냐, 묻고 싶을 것이다. 그에 대한 내 대답은 이하동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무 자르듯 단순간에 시원스럽게 행해질 수 있는 일은 분명 아니다. 불편한 상황 속, 갑작스럽게 던져진 질문에 묵비권을 택하고 어색함을 감내할 용기. 그것은 나에게 있어 그 무엇보다도 힘들고 어려운 덕목이다.   


그로부터 얼마 후, 언젠가 B가 말했다.  


“저 사람은 이렇게 사람 많은 데서 저런 특이한 머리띠를 하고 다니네. 참 별나다.”  

“글쎄 별로? 자기 마음이지 뭐. 다른 사람 시선 의식할 필요가 있나.”  


B는 돌연 나를 의아하다는 듯 쳐다본다.  


“그래? 근데 너 저런 사람들 싫어하지 않았어? A가 그러던데.”  

“그랬나..?”  


이렇게 또 자기혐오의 굴레는 바쁘게 돌아간다. 결국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린 처량한 내 모습에 연민을 느끼지만, 그것이 가장 정확한 나의 현 주소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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