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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연 Mar 01. 2019

수월리의 어느 밤





그가 그의 무릎 위 걸터 앉은 내 몸의 곡선을 따라 느리게 움직이던 손가락을 셔츠 속으로 밀어 넣는다. 차가운 감촉이 체온에 거칠게 와 닿고, 두 팔은 그의 어깨 위에 둘러졌다. 바람결에 타고든 체취는 비누향에 가까웠다. 줄곧 코끝을 스치는 풀내음에 섞여 잘 구분이 되진 않았지만.

채 마르지 못한 그의 머리칼을 가만히 만지다 반쯤 눈을 뜨니, 어둑한 조명 아래 드리운 속눈썹이 보인다. 그리고 입술. 사실 오감은 언제나 그 곳에 매여 있었다. 불과 몇시간 전에도, 뜨거운 찻잔에 대어진 그의 그것을 쳐다보다 나는 제 혼자 달아올랐다.
혈색이 옅게 비치고, 무언가 힘주어 말할 때 가냘프게 떨리던 그 애달픈 입술이 이 순간 나의 것. 꽤나 흡족했다.

나는 그곳에 손가락을 가져다 댄다. 생각처럼 부드러웠다. 손 끝에 닿은 촉감은 몸 구석구석으로 빠르게 퍼졌다. 따뜻한 숨결이 피부를 감싸 돌았고, 더는 지체하기 어려워 서둘러 입술을 겹쳐냈다. 그가 미세하게 움찔이더니 이내 나를 받아낸다. 이런 순간마다, 어울리지 않게 경직되곤 하는 그의 모습은 언제나 사랑스러웠다. 포개진 입술이 내 리듬에 맞춰 부드럽게 벌어지고, 얽혀진 혀가 서로를 갈구할수록 호흡의 빈도는 불규칙 해졌다. 내 손길은 자연스레 그의 등판에서부터 그 아래까지의 살결을 지났다. 맞닿은 두 피부의 온도가 하나로 닮아가고, 그의 숨결이 곧 내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속절없이 좋았다.

그는 입술의 움직임을 내 목선을 따라 조금씩 옮겼다. 점점 더 가빠진 호흡이 그의 머릿결에 맞닿고, 같은 박자로 하나씩 풀어져 나간 셔츠의 단추가 더는 남아 있지 않자, 그가 문득 동작을 멈췄다. 열심히 오가던 입술을 떼어 내곤 장난기 띈 입매로 내 속옷을 벗겨 내더니 두 눈을 꼭 맞춘 채 얼굴에 드리운 내 긴 머리칼을 귀 뒤로 말끔히 넘긴다. 나는 그의 이 같은 점을 사랑했다.

선선한 밤 공기가 피부를 스쳤다. 나는 나를 가득히 담아내는 갈색 빛 두 눈동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달아오른 그의 한쪽 뺨을 살짝 밀어내며 웃었다. 그는 밀려진 고개를 바로잡지 않은 채로, 비스듬히 나를 올려다 보고 천진스레 따라 웃었다. 귓전을 간지럽게 스치던 그의 낮은 음색은, 그렇게 아껴보던 황홀한 그 곳의 밤 하늘보다도, 꽤나 더 좋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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