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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Feb 26. 2020

꿈과 현실의 간극

캄보디아 캄퐁톰을 생각하며

어젯밤 꿈에서 캄보디아에 갔다.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러 온 아이들을 만났다.

나는 미수를 안고 다른 아이들의 안부를 물었다. 꿈이라 우리는 대화가 잘 되었다.


캄보디아에서 나는 캄보디아어를 못하고,

미수는 한국어를 못하니 우리 둘은 짧은 영어로 소통을 하곤 했다. 미수가 어릴 적에 국제학교를 다닌 적이 있어서 영어를 배웠다고 했다.


우리가 가장 긴 대화를 한 것이 내가 따리음 마을을 떠나던 날이었다. 미수는 나에게 딱 붙어서 ‘한국에 가지 말라’고 했다. 내가 짐을 싸는 동안 옆에서 지켜보던 미수는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보다 아이들이 먼저 떠났다.

집을 떠나 따리음 마을에 살던 아이들이

잠시 살던 집에 놀러 간 사이에 나는 짐을 챙겨 따리음 마을을 떠나 씨엠립으로 가야 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지 못한 게 내내 마음에 남았다.


지난주, 내가 캄보디아를 떠난 지 2주째 되던 날 유미 선교사님이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무슨 일인가 하고 받았더니, 아이들 얼굴이 나왔다. 아이들이 내가 보고 싶다고 해서 영상통화를 해주신 것이다.


핫팬츠를 입은 캇나는 여전히 근육질의 몸이었고, 은근슬쩍 손가락에 낀 반지를 자랑했다.

(남자 친구에게 받았단다. 맙소사. 캇나는 겨우 12살인데) 아냘과 미사는 잠시 얼굴을 비추더니 사라졌다.


아포는 전화기를 손에 들고 놓지 않았다.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우리는 얼굴로만 이야기했다.

우스운 표정도 지었다가 심각한 표정도 지었다가. 미수는 저 멀리서 몇 번 화면을 쳐다보고는 스윽 지나갔다.


20분쯤 통화를 하다가 내가 먼저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하고픈 말이 너무 많았다.

‘잘 지내?’, ‘아픈 데는 없어?’, ‘요즘 밥은 잘 먹어?’, ‘캇나랑 아포는 아직도 자주 싸우니?’, ‘고양이들 많이 컸지?’


캄보디아어를 배워야 하나 싶다.

도무지 꼬불꼬불한 글씨를 배울 자신은 없지만 말이라도 몇 가지 할 수 있으면 아이들과 종종 전화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다 또 내 열정이 식어버리고, 아이들을 잊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할 일이 많고, 만날 사람이 많은 한국에 살면서 캄보디아에서의 2주를 잊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요즘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관한 뉴스로 한국이 들썩인다. 이러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두려워하는’ 바이러스에 먼저 감염이 될 것 같다. 시시때때로 날아오는 확진자 동선 문자에 괜히 바깥에 나가기도 겁이 난다.


‘아무 생각 없이’ 또 ‘마스크 없이’  카페를 가고, 지하철을 타고, 모임에 가고, 사람들을 만났던 게 멀게만 느껴진다. 너무도 당연했던 일상을 잃고, ‘혹시 감염자가 곁에 있지는 않은지’, ‘이곳에 다녀가진 않았는지’ 의심하고 있다.


사람들을 동요하게 만드는 가짜 뉴스도 많다.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미친 사람이 정상인지, 미치지 않은 사람이 정상인지’라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아직도 답을 모르겠다.

과연 세상 따라 미쳐야 할지,

세상을 거부하고 미치지 않아야 할지.


어젯밤 꿈은 온통 걱정과 두려움 속에서 나를 건져내어 한줄기 바람을 쐬어주는 꿈이었다.


겨우 몇 주 전이지만 그곳에서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바라보며 자연을 만끽했다. 동물들과 어울리고 달콤한 과일을 먹었다. 흙먼지가 날리는 길을 달려 시장에 가고, 별을 보고 잠이 들었다.


아마 곧 한국도 일상을 찾아갈 것이다.

따뜻한 바람이 불며 코로나 바이러스와 공포가 모두 눈 녹듯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다시 찾은 일상에 감사할 것이다.

그리고 나면 좀 더 자연과 가까워지면 어떨까? 피어나는 꽃도 보고, 제철 과일도 먹고, 따뜻한 저녁밥을 지어 가족들과 함께 나눠먹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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