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랩소디>
나에겐 특별한 능력이 있다.
뭐, 그렇다고 내가 외계인 이라거나, 초능력이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그저 나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보인다.
그건 사람들의 머리 위에 둥둥 떠 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머리 위에 이걸 띄우고 다닌다. 그렇지만 그들 스스로는 느끼지 못한다.
귀신이나 뭐 그런 것은 아니다.
나도 처음 이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눈을 비비고 몇 번이나 확인을 했다.
'풍선인가, 새로 나온 머리띠인가'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신의 머리 위에 무엇이 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건 진짜 내 눈에만 보였던 것이다.
그건 사람들마다 모양이 다르다.
대충 어떤 느낌인지 형체를 통해 느낄 수 있지만,
종종 형태를 바꾸기도 하고 모호한 모양을 띄기도 하기 때문에 콕 집어 ‘어떤 것’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애매하다. 아마 구름이나 연기가 뭉쳐져 있는 형태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구름모자(나는 이것을 구름모자라고 부른다. 상우의 구름모자, 누리의 구름모자 등)를 쓰고 다니는 사람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깨닫는 데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왜냐하면 내가 그걸 깨닫기에 미처 수준이 닿지 못했기도 하지만, 이것은 당사자를 잘 알아야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나는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이 구름모자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정확한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여행을 다니며 어떤 특이한 사람을 만났는지 설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도중에 끼어든 한 친구가 계속 ‘그래서 경비는 얼마나 들었어?’, ‘숙소는 얼마짜리였는데?’, ‘그거 비쌌어?’라고 질문을 해댔다. 자꾸 말이 끊기자 짜증이 치솟아 친구에게 한 마디 하려는 순간, 그의 구름 모자가 보였다. 그 구름 모자는 돈 모양이었던 것이다.
그때는 ‘혹시 구름모자는 사람의 관심사를 뜻하는 것일까’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구름모자는 그 모자를 쓴 사람이 가진 ‘기준’ 임을 알게 되었다.
사람마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기준에 따라 사람의 등급을 나눈다. 괜찮은 사람, 별로인 사람, 좋은 사람, 완벽한 사람 등.
처음 이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도무지 사람들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대화를 나누려는 사람들보다 그들의 구름모자가 먼저 보이니, 그들이 어떤 기준으로 나를 평가할지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을 피해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려면 이래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 나도 뻔뻔해지기로 했다. 그리고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구름모자를 적극 활용했다.
영업을 하는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고객의 관심사를 알려고 무지 애를 쓰는데, 나는 이미 상대방을 약점을 쥔 검투사나 다름없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내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잘 아는지’ 매우 궁금해했다. 그러나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 내가 말하기도 전에 이미 그들은 자신들만의 구름모자로 단정을 지어버렸다.
예를 들면, 대학교 구름모자를 쓴 사람은 내가 ‘대학을 잘 나와서 그렇구나’라고 얘기했다. 바로 전날에 책 구름모자를 쓴 사람은 ‘책을 많이 읽어서 잘 아는구나’라고 얘기했는데 말이다.
뭐 어쨌든,
사람마다 이 구름모자의 모양은 제각각이다.
돈, 학벌, 지식, 외모 등등. 말투나 목소리, 눈빛의 구름모자를 가진 사람들도 있다. 이런 구름모자들은 좀 재밌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들의 기준에는 나름대로 일리가 있었다. ‘목소리에 인격이 드러난다’ 거나, ‘눈빛에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거나.. 나도 가끔은 가족들의 말투나 눈빛으로 파악할 때가 있긴 하다.
진짜 재미있는 것은 아이들이다.
어느 시점이 지나면 아이들에게도 구름모자가 생긴다. 그게 정확히 어떤 계기로 생기는 것인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같은 또래라도 있는 아이가 있고, 없는 아이가 있다.
그리고 아이들은 구름모자가 자주 바뀐다. 아직 어려 주관이 잘 바뀌는 것 같다. 한 여자아이는 원피스 구름모자를 가지고 있었는데, 친구가 예쁜 머리핀을 하고 나타나자 순식간에 구름모자가 머리핀으로 바뀌어 버렸다. 설이 지난 지 며칠 되지 않았던 날, 어떤 아이는 떡국 구름모자를 쓰고 있었다. 지나가면서 그 아이가 하는 말을 들어보았는데 ‘떡국을 세 그릇 먹었으니, 이제 내가 형이다’라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구름모자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사실 최근에 알게 된 한 사람 때문이다.
그 사람은 구름모자를 쓰고 있지 않았다.
지금까지 아기들을 제외하면 구름 모자를 쓰지 않은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구름모자가 보이지 않았다. 대화를 나누어보고, 며칠간 지켜보면서 왜 그에게 구름모자가 없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사람을 자신의 기준으로 구분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어떤 것에 편견이 없으며, 어떤 것으로도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 사람. 누구든 존중해줄 수 있어서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는 그런 사람이었다.
보통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칭찬하면, 구름모자의 모양이 같기 때문이거나 그 사람에 대한 아부인 경우가 많다. 구름모자가 같을 때에는 상대방이 자신과 같은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의 장점을 알아보고 인정하기 쉽다. 그런데 구름모자의 모양이 다름에도 칭찬을 할 때에는 그저 하는 말이거나 아부인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그저 사회생활을 잘하기 위해서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구름모자가 없는 이 사람은 누구나 칭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이 진심으로 상대에게 가닿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 사람의 행동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남녀노소 누구든 이 사람을 좋아했다. 그의 한 걸음걸음에서는 마치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꽃향기를 맡은 벌과 나비가 모여들듯이 그의 주위에는 항상 사람들이 따랐다.
그가 떠난 후에야 나는 알게 되었다.
살면서 만나기 어려운 사람을 만났음을.
실로 대단한 인격을 직접 보았음을.
그가 다녀간 후에 이곳이 좀 더 아름다워졌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