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두 번 나는 요양병원에 간다.
그곳에서 노란 조끼를 입고, 침대 사이를 오가며
할머니 할아버지들 옆에서 동화책을 읽는다.
지난 화요일에는 '도깨비감투’라는 동화책을 가지고 갔다. 가난한 대장장이가 도깨비에게 감투를 얻어 쓰고, 도둑질을 하여 부자처럼 살지만 결국 다시 평범한 대장장이의 삶으로 돌아오게 되는 이야기이다.
낭독을 듣던 한 할아버지는
‘옛날에는 도깨비들이 있었지’하고 말문을 열었다.
사람들 눈에는 불덩어리로 보이는 도깨비불이 밤에 종종 나타났는데, 주로 물가에서 날아다녔단다.
어느 순간에 그 불이 옆으로 와서 사람처럼 보일 때가 있는데, 이럴 때 도깨비에게 홀리지 않도록 정신을 단단히 차려야 한다.
행여나 도깨비가 ‘씨름이라도 하자’하면 반드시 넘어뜨려야 한다. 만약에 도깨비를 넘어뜨리지 못하면 그대로 도깨비에게 홀려버리는 것이라고.
그렇지만 도깨비라는 것이 키만 멀죽히 크지, 사실 가볍기 때문에 딱 잡고 한 방에 넘어뜨릴 수 있단다.
할아버지의 말씀에 의하면,
이게 바로 ‘물고기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란다.
짧지만 강렬한 도깨비 이야기가 인상 깊게 남아 있었다.
다음날 저녁, 밑에 집에 사는 일곱 살짜리 은찬이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신이 난 은찬이는 '우리 집에서 자고 간다'며 해맑게 부모님을 배웅했다.
열 시가 넘어서도 자꾸 칼싸움을 하자기에 슬쩍 ‘도깨비감투’ 책을 꺼내 들었다. 은찬이는 ‘그게 뭐야?’하며 스르르 내 옆에 와서 앉았다.
“도깨비감투를 쓰면 몸이 안 보인대! 그럼 은찬이는 어디에 갈 거야?”라고 물었다.
“나는 왕이 있는 데로 가서 왕을 없애고 내가 왕이 될 거야.”라고 대답했다.
도깨비감투 이야기가 너무 짧게 끝나버리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들었던 도깨비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자 도깨비 이야기를 듣던 은찬이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 신나게 칼싸움을 하던 기세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은찬이는 ‘도깨비를 만나면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나는 장난스레 ‘장풍을 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은찬이는 ‘장풍이 뭐냐, 난 모르는데’라고 말하면서 더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장난으로 시작했던 도깨비 이야기에 내가 거짓말을 점점 보탰더니, 은찬이는 조용히 ‘엄마한테 가고 싶다’고 말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나는 ‘노래 한곡만 다 부르면 된다’고, '그럼 도깨비를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나름대로 분위기를 바꾸어 보려고 한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 무서운 은찬이는 아무 노래도 생각이 안나는 것처럼 보였다. 미안해진 나는 직접 곰 세 마리를 불러주고, 집에 데려다주었다.
다음 날, 엄마를 통해서 은찬이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은찬이는 보통 아빠랑 거실에서 자는데, 그날 밤 ‘아무 말 없이’ 베개를 들고 엄마 옆에서 잤단다.
도깨비 이야기를 해주시던 할아버지도, 이야기를 듣던 나도 우리 엄마도 아빠도 재미 삼아 얘기했던 도깨비였다. 아주 잠깐 흥미롭고 마는 얘깃거리였다.
웃자고 한 말이었다.
그런데 은찬이에게는 웃을 얘기가 아니었다.
은찬이가 심각한만큼 순수했고,
나는 어느새 그로부터 멀찍이 살아가고 있다.
도대체 이 아이가 얼마만큼 순수한 건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것이 나에게 심각하게 와 닿는 것이다.
할아버지에게는 물고기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나 있던 도깨비가 아직도 은찬이를 통해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