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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Jul 02. 2019

백 년 마인드

<서른 랩소디>

‘인생은 50이 되기 전에 평가해서는 안 된다’

<백 년을 살아보니>라는 책의 저자인, 올해 100세가 되신 김형석 교수님의 말씀이다.

백 년을 살아보니, 인생의 황금기는 60~75세란다.

심지어 ‘60이 되기 전에는 모든 면에서 미숙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고백한다.

신박했다.


뿐만 아니다.

백 년을 산 사람의 클라쓰는 남달랐다.

웬만한 친구들은 거의 대학 총장이거나 장관이거나 목사다.

초등학교 선배가 김일성이고, 중학교 선배가 황순원이며, 함께 공부한 동기가 윤동주다.

인촌 김성수, 도산 안창호의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다고 말한다.

마치 걸어 다니는 역사책 같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에 할머니에게 6.25 전쟁 때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흥미진진했다.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그래서요? 그다음에는요?’라고 묻게 되었다.


백 년을 살아본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사실 우리 모두 알만한 것이다. 할머니에게 듣던 이야기처럼 사람답게 살면 언제나 길을 찾아낼 수 있다는 말이다.

착하게 그리고 열심히 살면 복을 누린다.

진리 같은 것이다.

그런데 진리가 진실일까?


친구들과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사람이 제일 중요하고, 사랑이 먼저다.

그렇지만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 거다.

‘현실적인 조건’들 때문에 싸움이 일어나고,

헤어지기도 하니까.

‘이왕이면 조금 더’ 서로 물질적인 준비가 되었으면 좋겠고,

‘이왕이면 조금 더’ 상대의 부모님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거다.

맞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더 잘 산다고 나쁠 것은 없으니까.

그런데 이러한 현실은 진실일까?


“만약 모든 진리가 진실이라면, 왜 세상은 그렇지 않은 일들 투성이냐고!" 외치던 나는 점점 잠잠해진다.

‘현실’을 알아가면서 입을 다물게 된다.

‘현실도 모르는 어린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현실과 진리 사이에서 공황장애가 올 것 같을 때,

어디선가 슬며시 모깃불 냄새가 나는 것을 느낀다.

한 여름 뜨거운 밤,

별이 보이는 평상에 누워 할머니 이야기를 듣는다.

이야기가 무서워질수록 할머니 속을 파고든다.

어둠 속에서 듣는 이야기는 온갖 수렁이 난무하지만, 할머니의 젖을 만지며, 나는 위험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다.

나는 안전하리라는 믿음으로 이야기 고개를 넘는다.


왜 나는 안전하다 느꼈을까?

아마 할머니에게 꼭 안겨 있던 탓도 있겠지만,

할머니의 말이 ‘진리’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언제나 확실한. 누가 들어도 인정하는.

그렇기에 진리 안에 있다면 나는 안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진리란 그런 것이다.

그래서 현실과는 같지 않다.

내가 점점 현실에 가까워진다면, 진리에서 점점 멀어질 수도 있다.

따라서 점점 살아가는 것이 불안하고, 두려워지기도 한다.

진리는 진실되지만, 현실은 진실하지 않을 수 있다.

현실이 진실하지 않을수록 더욱 진리의 진실을 의심하게 된다.  



겨우 서른밖에 안된 나에게

백 년을 살아본 할아버지가 하는 한마디 한마디는,

안전한 걸 알기에 무서울수록 신이 나서 빠져드는 옛날이야기 같았다.

할아버지가 이야기하는 진리 안에서 나는 더욱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삶의 불안함과 두려움을 떨쳐내고,

또 한 번 현실에 좌지우지되지 않을 것을 다짐해볼 수 있었다.   


‘얼마만큼의 돈을 가져야 할까?’라는 물음에

‘인격의 수준만큼’이라고 대답해주고,

‘성공이란 뭘까?’라는 물음에

‘재능과 가능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할아버지.


서른을 반쯤 살아낸 지금.

현실과 진실 사이에 고민하는 이때,

‘진리’를 이야기해주는 할아버지를 만나 다행이다.  


혹여나 잠깐 살다 간다 하더라도,

아니 백 년을 살다 간다 하더라도

백 년을 사는 마인드로 하루를 살면 잃을 것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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