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랩소디>
어릴 적에 집 앞 공터에서 자주 놀았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그곳은 공터는 아니었다. 공사를 하려고 여러 종류의 구조물을 가져다 놓았지만 공사는 하지 않는 곳이었다. 공터의 반은 할머니들이 채소를 키우느라 점령했고, 나머지 반은 아이들(나와 동생)이 차지했다. 동네에서 어린아이들은, 특히 이렇게 위험한 곳에서 뛰어다닐만한 아이들은 우리밖에 없었기 때문에 주로 나와 동생의 놀이터가 되었다.
어느 날, 동생이 나 몰래 그곳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손에는 무언가 들고 있었는데 정확하게 무엇인지 보이지 않았다. 나와 동생 사이에 비밀이 있었을지언정 그 공터에서 비밀을 만들기란 쉽지 않았다. 수상한 마음으로 나는 조용히 동생의 뒤를 밟았다. 구조물을 피해 여기저기로 꺾어 들어가더니 멈춰 선 동생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궁금함을 못 참고 다가섰더니 그곳에는 어떤 소년이 한 명 있었다. (물론 지금은 소년이라고 표현하지만, 사실 그때 나에게는 어른처럼 느껴지던 오빠였다)
그 소년은 나무로 된 전선드럼 안에 앉아 있었다.
아니, 그곳에 살고 있었다. 커다랗고 원형으로 된 두 개의 큰 나무 판 사이에 둥그렇게 막혀있던 나무 조각을 몇 개 뜯어내고 그 안에 들어가 살고 있었던 것이다. ‘살고 있었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곳에 이불이 깔려있었고, 막 동생이 베개를 가져다주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 장면을 보았을 때는 마치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것처럼 놀랬다. 그런데 점점 그 나무집이 아늑해 보이기 시작했다. 동생과 나는 식탁을 텐트로, 박스를 비행기로, 의자를 자동차로 상상하며 놀아본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환상적인 독립공간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우리는 그 소년의 집이 부러운 나머지 근처에 비슷한 나무통을 찾으러 다녔다. 어딜 가도 그 집만큼 완벽한 공간은 없어 보였다. 그래서 우리는 거기서 함께 머물기로 했다. 소년이 양해를 해주었는데, ‘밤에는 자기가 이곳에 와서 잘 테니, 낮에는 너희가 여기서 놀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기쁜 마음에 동생과 나는 매일 학교를 다녀온 후,
간식과 장난감을 가지고 아지트로 갔다. 소년이 있는 날도 있었지만, 대부분 낮에는 비어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간식을 먹기도 하고, 낮잠을 자기도 했다. 가끔 꿈에는 소년이 나왔는데 마치 지구를 지키는 용사와 같은 이미지였다. 소년이 자기 입으로 ‘낮에는 중요한 일을 하러 간다’고 말했기에 그렇게 믿은 것도 있지만, ‘이렇게 멋진 아지트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대단한 사람’이라는 나의 순진무구함도 더해진 탓이다. 할머니가 ‘왜 자꾸 베개랑 이불이 사라지냐’며 짜증을 내실 때는 동생과 나는 그 소년을 보호하기 위해서 독립운동가처럼 입을 굳게 닫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 소년은 가출 청소년이다. 심지어 그 공터는 언제 공사가 재개될지 모르는 위험한 곳이었다. 물론 그 공터에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공사가 진행이 안되고 있지만, 날카로운 못이나 나사에 찔려 다칠 수도 있고, 또 다쳐서 누워있어도 아무도 모르는 그런 곳이다. 어떻게 그런 곳을 ‘환상적인 아지트’로 보았는지, 가출 청소년을 ‘지구를 지키는 용사’로 보았는지.
하지만 한편으로 그 소년은 진정한 ‘독립’을 몸소 보여준 사람이었다.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모르지만, 나의 기억에 그곳이 환상적인 아지트로 남아 있는 것이나 그 소년이 용사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아마 나쁜 사람은 아니었을 것 같다.
혹시 다른 사람들의 ‘독립’을 도와주며 셰어하우스 사업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서른이 된 아직도 독립을 못한 나로서는 ‘정말로 그 소년이 대단했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