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랩소디>
과연 사람들 사이에서
얼마만큼의 이해가 오고 갈까?
‘이해했어’라고 말할 때,
얼마 정도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솔직하게’라고 말을 시작할 때
얼마나 솔직하게 하는 말일까?
‘공감된다’는 말은
몇 퍼센트 공감될 때 할 수 있는 말일까?
‘모르겠다’는 말이
정말 아무것도 모를 때 하는 말일까?
이십 대에는 이런 말장난 같은 고민은 하지도 않았다. 서른이 된 나는 자꾸 이것을 캐묻고 있다.
“이해했다고? 얼마나 이해했는데?”
“공감한다고? 진짜 공감하면 지금 그런 말 못 할 텐데?" "모르겠다고? 생각하기 싫은 건 아니고?”
세상에 화가 나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도 저도 아닌,
분명하지 않은,
미심쩍은,
어정쩡한,
대~충.
세상이 이렇게 대충 돌아가도 되는가 싶을 정도로 숨이 턱 하고 막힐 때가 있다.
조금 더 고민해 봐야 하는 건 아닌지,
조금 더 진지해야 하는 건 아닌지,
조금 더 진심이어야 하는 건 아닌지.
그런데 고민도, 진지함도, 진심마저도 0부터 100까지 줄 세워서 확답을 받을 수가 없는 것들이다.
그냥 내가 예민한 것이라고들 한다. 쓸데없이. 굳이.
이보다 어릴 때는 관심이 없는 것이고,
이보다 나이가 들었을 때는 다 괜찮아질 일들일까.
그럼 세상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나한테 문제가 있는 것이다.
지금 내가 세상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 나는 왜 세상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가?
이십 대에 몰랐던 것을 알아가는 중인데,
확실히 알지는 못해서 그런 것일까?
어렸을 때는 남들 마음까지 생각할 수 없었는데,
이제 남들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지만 내 마음처럼 남들 마음을 쉽게 알 수 없어서 답답한 것일까.
알다가도 모를 세상 속에서,
알다가도 모를 인간관계를 하면서,
알다가도 모를 나를 배워가는 중이다.
사실 배운다는 것보다는 모난 부분을 깎이고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이렇게 이 시기를 지나가고 나면 나는 세상에 좀 더 잘 적응해 있을까? ‘어른이네’하는 소리를 들을까? 그럼 괜찮아질까? 아무래도 지금 나는 서른춘기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