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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증상의 기록

_단상(斷想) 모음집

by JJ

사람들은 병을 앓는다

그럴 때 발현되는 징후들을 증상이라고 말하지

그렇다면 이런 것들은 어떠한 증상의 일종일까

내가 아픈가

아픈 건 나을 수 있다는 말이잖아

떠오르는 수만 가지의 생각들

잠식된다

목소리가 들린다

떠든다

맥락도 없이 떠도는 말들이

의미를 갖추고 있다는 착각이 들 때 즈음이면

어쩌면 나는 미쳐가고 있나

제정신이 아닌가

누구나 이런 거야?

나는 끝없이 생각한다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나?


꿈을 꾼다

악몽이다

어딘가에 누워있다

묶여있다

어둠과 빛의 경계

빛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세 명인가. 아니, 다섯 명이야'

속으로 나는 말한다

그들은 가까이 다가와서는

나를 먹기 시작한다

소리치지 못하도록 목부터 먹는다

피는 흐르지 않는다

나는 그저 한 덩이의 고기

꿈을 깬다


다시 눈을 감는다

머리가 센 할머니가 있다

내가 저 사람을 알던가

본 적이 있던가

그녀가 절벽을 향해 간다

할머니 그곳은 위험해요

위험하다니까요

그녀가 절벽 너머로 손을 뻗는다

무언가를 잡을 수 있는 사람처럼

그러고는 떨어진다

끝도 보이지 않는 추락

비명도 들리지 않는 낙하

질끈 눈을 감았는데

캄캄한 방에서 눈을 떴다


밤들의 연속

악몽이 이어진다

그래도 새벽은 길었으면 좋겠어,

하고 생각한다

날이 밝으면 살아갈 자신이 없으니까


괜찮아?

괜찮아

근데 말이야

괜찮은 게 뭔데?

사실 차라리 펑펑 울었으면 좋겠어

안 괜찮은 게 나은 것 같아

안 괜찮을 수 있는 용기가 나는 없으니까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걔 기억나?

피아노 친다고 수업도 듣지 않던 애

우리 중학교 때 콩쿠르에 나가서 상 받았다던 애 있잖아 왜

얼마 전에 들은 소식인데 걔 완전히 맛이 가버렸대

대학에서 기간제 강사 한다더니

언젠가 자기 손톱을 죄다 뽑아버렸다지 뭐니

피아노 건반을 두들길 때 손톱소리가 거슬린다나

우울증 비슷한 거 여튼 그랬는데 약을 안 먹었대

자기가 손톱을 뽑은 것도 기억 못 했단다

참 무서운 병이지 그치

우린 그럴 일 없지만 그렇게 되면 꼭 병원 가자

서로 전화도 해주고

알겠지?

난 대답하지 않았다


야, 왜 대답이 없어

응, 그래, 그래야지

대답한다


근데 넌 모르잖아

손톱을 뽑는 것도 용기가 필요했다는 걸

그러지 않으면 걘 살 수가 없었을 거라는 걸

그 애는 살고 싶어서 그랬다는 걸

말하지는 않았다


감정의 유랑

괜찮고 싶지 않은 마음

온 적 없는 전화

정신의 붕괴

어떤 증상의 기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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