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단상(斷想)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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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아, 나 강화도에 왔어
계획한 건 아녔는데 그냥 훌쩍
답답해서 바람이나 쐴 겸 하고
집에 있으려니 힘들어, 너도 알잖아
왜 여기는 올 때마다 매번 비가 올까
왜 하필 여기가 생각났는지 몰라
비바람이 사납던 궂은날이었어
김포를 지나 강화로 들어서는 바닷길 다리 위를 지날 때
성난 해협이 넘실거렸는데
바다를 본 순간 문득 턱 끝에 숨이 막히더니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 거 있지 뭐니
참다가 아, 참지 않아도 되잖아
차 안에 있으니까 아무도 듣지 못하잖아
게다가 비까지 쏟아지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그냥 펑펑 울었어
그냥, 그냥
서러워 보이는 바다가 무섭고 슬퍼서 울었어
밤에 다시 바다에 나갔다
숙소에 있던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따라와 주었어
또 속절없이 주책맞게 울어버리면 어쩌나 했는데
고양이가 내 무릎에 앉아서는 괜찮아, 괜찮아 하는 것 같아서 정말 괜찮았어
귀엽고 부드러운 털뭉치들은 정말 신기해
마음을 만지는 초능력이 있는 것 같아
단아, 너는 밤바다 앞에 오래 앉아있어 본 적 있니
피부 틈 사이로 모래알이 스며들 때까지
다리가 저리고 감각이 사라질 때까지
서편 하늘에 있던 별이 오른쪽으로 스러져 갈 때까지
그러고 있으니 새벽엔가 갯벌이 훤히 드러나더라
새카맣고 축축해서 내 마음을 닮은 것 같았어
구멍 뚫리고 갈라진, 벌레가 사는 마음
그렇게 새벽을 보내고 동이 텄는데
궂은날이 가니 하루 지나 봄이 왔어
요즘은 하루도 예측할 수가 없는 날씨다
단아, 신기하지
우리는 이런 마음인데 강화는 꽃이 한창이야
살구꽃 복사꽃 벚꽃 오얏꽃 조팝나무 꽃까지 산과 들 천지에 꽃이다
어제는 사람도 차도 휘청일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었는데
연약한 꽃송이들이 떨어지지도 않고 탐스럽게 달려있다니
생의 본능은 얼마나 강한 힘인가 말이야
네가 이걸 봤더라면 참 좋아했을 텐데, 하고 생각했어
단아, 꽃을 마주친다면 꼭 오래 바라보아야 해
가까이 다가가 손을 뻗어보거나 향을 담을 수는 없더라도 알았지,
꽃은 금방 지고 떨어져 버리니까
단아, 오늘은 성당에 가서 기도를 했다
용서를 빌었어
추하고 악하고 비열한 나를 용서해 달라고
예쁜 꽃을 보기에 나는 너무 더럽고 흉측해서 미안하다고 빌었어
기도는 하는 법도 모르면서
눈물도 새어 나오지 않게 눈을 질끈 틀어 감고
피가 통하지도 않게 깍지를 꽉 묶고는
그렇게 몇 시간이고 빌었어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하고
바다는 꽃이 떨어져도 바다지, 단아
눈물과 오물이 떨어져도 바다가 되지
무엇이 섞이더라도 바다는 바다야
내 추함과 악함, 증오와 분노, 거짓과 위선, 방탕과 음란, 냉소와 기만, 허영과 오만이 섞인대도
혹은 내 수천수만 가지의 묶이고 꼬인 생각과 들끓는 감정이 섞인대도
바다는 바다
그래서 나는 바다가 좋은가 봐
단아, 우린 서로의 표정과 향기를 추억하고
각자를 조금씩 죽여가면서
나는 너에게 보내지 못할 편지를 적고
너는 너에게 닿지 않은 편지를 숨죽여 읽겠지
오늘의 내가 너에게 아직 살아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