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단상(斷想) 모음집
•
•
이름 없는 이도 인사를 할 수가 있을까요
천둥이 치던 날 창밖의 하늘은 낮인데도 잿빛이었고
어젯밤 침대 귀퉁이에 옹송그렸던 몸 그대로로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도 견디는 것도 아닌 채
그렇게 새벽은 지나 시간이 흘렀던 것뿐이었고
그대로 나는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늘이 울릴 때마다 무너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 소리가 좋더군요
세상도 견디지 못하는 것 같아서요
그 굉음이 말 없는 위로처럼 들려서요
'거 봐, 너도 못 참겠지' 싶어서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방에서 세상이 한 뼘씩 부서지기를 바랐습니다
나는 정말 사라지고 있는 걸까요
혼자 멀거니 허공만 바라봤습니다
바닥에 무언가 떨어져있지만 줍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나도 바닥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먼지였을까요, 먼지에도 죽은 나의 조각이 섞여있을까요
그럼 사라진 나는 얼마간 먼지가 되었을까요
어디선가 아이 우는 소리가 났습니다
어디에서 나는 소리인지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정확히는 그럴 의지조차 없었다는 게 맞겠습니다
언젠가부터 모든 것이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오래전 말라버린 화분들도 치우지 않았습니다
나도 이대로 놓여 있으면 언젠간 사라질까요
아니, 어쩌면 나는 저 시든 잎처럼 이미 사라진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방
시간이 멈춘 공간
호흡 없는 숨, 감각이 떠난 새벽
굳게 닫힌 문과 빛 들지 않는 창
꺼진 전등과 멈춘 시계
스치는 바람에 방황하는 별들
그 사이 어딘가에 잃어버린 이름과 사라지는 내가 있습니다
이름 있는 것들의 시간은 시침과 함께 지나가고
저의 시간만 덩그러니 남아서 깜부기불처럼 사그라집니다
이제는 점점 작아져 빛 사이를 떠도는 먼지처럼 희미해진 것 같습니다
사실은 이것이 나의 원래였을까요
태초였고 기원이었고 우주의 한 올이며 모래였고 하나의 입자였던 나
처음부터 이름도 성도 없었던 나
이름을 잃은 나는 더 이상 글도 적을 수도, 숨을 쉴 수도 없습니다
인사를 건넬 수도, 좋아했던 것이 무엇인지 답할 수 조차 없습니다
전부였던 것을 잃은 사람은 자기 자신도 마저 잃는다고 합니다
더 격렬하고 열심히 자신을 지우는데 몰두한다고요
제가 이름을 잃어버린 것처럼요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의지를 잃고 무너져버린 시간들
처절하고 비참한 그 시간들은 이름 없이 부재합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은 존재할 수 없기에 이름 없이 인사를 보내보려고 합니다
존재하지 않는다는 두려움은 사람을 사무치게 하니까요
그 무의식은 얼마간 살고 싶다는 발악으로 나를 데려가고
존재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분노하게 합니다
악물린 턱을 틀어쥔 채 울고, 묻고, 애원하게 합니다
안녕한가요,
나의 처연한 새벽과 밤들을 건넌 시간들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름을 잃은 나도 여기에 있습니다
조금은 사라지고 있는 나도
그 모든 것을 견디며
그럼에도 여전히,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도, 안녕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