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아이

_단상(斷想) 모음집

by JJ

달에게 가고 싶었던 아이는

밤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너무도 멀고 먼 그 길을 뛰고

무릎이 다 까지고 손발이 해지고

구르고 넘어지고 할퀴어지다가

차가운 아침이 오면 상처가 식었고


달빛이 지나가고 남은 자리에

흉은 남아 가려워 터지도록 긁었고

고요한 밤에 구름에 싸인 달빛을

하염없이 바라만 보다가

그렇게 웃지 말아요,

그렇게 보지 말아요, 했단다


달은 밤이 오면 찾아올 뿐이지만

아이는 낮도 밤도 달음박질을 하던 자리에 서서

그 자리를 지키고는

먹지도 자지도 않은 채

낮도 밤도 언제 어디에서도

달의 흔적을 찾아 헤매었고


끈적이는 달빛이 입 안 가득 차오르고

자주 길게 그리움에 목이 말랐단다

타고 또 타는 갈증

가만히 안아주었으면 하는 마음

춥고 또 추워서 나는 눈물

길고도 긴 여행 끝에 찾아오는 피로

침대에 웅크려 추락을 기다렸단다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 기름때처럼 남아

살아 있으면서도 살지 못하게 했고

죽어 있으면서도 죽지 못하게 했고

어둠 속에 타는 전구를 보며

능소화를 닮았네, 능소화를 닮았네

그 끝에 추모라는 꽃말을 붙였단다


아이는 더 이상 바다에 찾아가지 않아

밀물 없는 파도는 그에게 온 적 없지

바라보기만 해도 모든 것을 앗아갔다

썰물, 썰물, 썰물, 또다시 썰물.

멀리 가라, 아주 멀리. 응,

숨어, 찾지 못하는 곳으로.


말을 나눠야만 내가 살겠어서

들려주고 싶어 지어냈던 이야기들

갈망의 대상도

연민의 마음도

어디로 향해야 할지 방황하는 시간에

검붉고 짙은 피로감


죽은지도 모르고 붙어있는 담쟁이덩굴과

달이 좋아 밤에 머물고 싶었던 아이

그저 달이 좋아 그 조각이 되고 싶었던 아이

내리다 떨어지다 쌓이다 썩다

달빛에 꽃이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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