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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Oct 05. 2022

살아있음의 항해를 떠나는 일

story 1. 어수룩한 여행자

배는 항구에 있을 때 안전하지만, 그곳에 머물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 [Paulo Coelho, 흐르는 강물처럼] 中

우리는 살아있기 때문에 항해하고 또 그렇기에 길을 잃는다. 아직 우린 방황해도 괜찮지 않을까. 사실 그건 세상이라는 바닷속에서의 유영이지 않을까.


퇴사를 했다. 문득 세상이 내 마음처럼 흘러가지 않는다고 느꼈을 때. 내 인생만큼은 내 마음과 같아야 하질 않겠는가. 살아있는 것처럼 살고 싶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 이 말이 위로라는 명목으로 통용되는 말 중 가장 마뜩잖은 말처럼 느껴졌다. 지나갈 오늘이 어제가 된다는 사실이 왜 위로의 탈을 쓰게 되었을까. 우리의 오늘은 오늘 끝나기에 행복해야 할 텐데. 그저 나의 젊은 날을 버티기보단 즐기고 싶을 뿐인데. 여행을 떠나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만 같았다. 나도 다른 사람들도 세상에 스치는 모든 것들도 살아있음을 실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때 그렇게도 뻔하지만 아름다운 사실들을 모두 잊어버리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나는 ‘이래나 저래나 버티지 못하는 요즘 젊은이’의 타이틀을 피하지 못하고 혀를 차는 시선을 뒤로한 채 회사를 빠져나왔다. 뭐 상관없다. 아무렴 어떠한가. 될 대로 되라지. 그러곤 비행기표를 샀다. 


 왜였을까, 걷는 행위를 좋아하긴 했지만 그리 오래 걸어본 적도 없으면서 별안간 스페인 산티아고엘 가고 싶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행이 ‘먼 북소리’처럼 들려왔다고 했던가. 나는 왜인지 무언가를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멀리 떠나 낯선 땅에 온전히 홀로 존재하게 되면 채워질 것만 같은 상실의 공허함. 그런 모호하고도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기분들이 불쑥불쑥 차올랐다. 묵묵히 걸어야만 하는 곳. 철저히 혼자이지만 언제나 함께라는 곳. 한 달 여 동안을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길 위에서 나와 배낭 하나만이 전부인 곳. 처음에 어떤 경로로 이 길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지 이제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이 순례길이란 정체에 대해 희미하게나마 윤곽이 잡히기 시작할 때부터 나는 꽤나 확신했던 것 같다. 내가 가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그 후로는 어떻게든 찾아보지 '않으려' 노력했다. 경험하기 전에 누군가의 경험으로 나의 경험을 가늠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온전히 나의 것으로 즐기고 싶었던 일종의 고집이었을 테다. 

치열한 월드컵 경쟁률을 뚫고 채택된 배낭 속 정예부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공부한 것이 하나 있다면 짐 잘 싸는 법. 아니, 그보단 짐을 '줄이는' 법. 줄이고 줄여야 한다. 상처에 바르는 작은 연고조차 챙길 수 없었다. 평생을 '혹시 모르니까' 병에 걸린 채 보부상 습관을 버리지 못한 나로서는 곤욕이 아닐 수가 없었다. 짐을 싸고, 잠그고 푸르고 쏟아내고 주워 담길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반복하고 나서야 짐이 추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완성한 나의 배낭. 여행 속에서 나의 전부가 될 7kg짜리 나의 작은 집. 

공항으로 가던 버스 안

10월의 쌀쌀하던 새벽 3시, 잠시 눈을 붙였을 뿐인데 알람이 울렸다. 어스름한 졸음이 여행을 재촉하는 듯했다. 집에서 나설 때, 배낭을 둘러매고 단도리를 한 모습이 제법 여행자 답구나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꼭 모양이 어른을 흉내 내는 아이 같아서. 제가 뭐라고, 몸뚱이보다 큰 짐짝을 짊어지고는 지구 반대편으로 떠날 거라고 생떼를 쓰는 어린아이. 집을 나서기 전 마주친 거울에는 오기와 독기라곤 없는, 순수한 경험을 향한 갈망과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의 내가 있었다. 생기가 가득 어려있는 푸드덕푸드덕 살아 있는 눈빛의 내가. 그날의 새벽에 나는 신발장 앞 거울에 잠깐 서서 눈으로 내 스스로를 몇 번이고 쓰다듬어주었다.


안개가 자욱한 새벽 5시에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엄마는 나를 터미널에 내려주고서도, 버스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거기 서 있었다. 버스를 탈 때면 늘 창 밖을 보며 끝없는 사색에 잠기곤 했었는데 희한하게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차만 탔다 하면 까무룩 잠에 들어버리는 특이한 멀미를 앓았음에도 잠도 오질 않았다. 그저 눈을 감고 검은 배경을 응시했다. 졸음이 남긴 흔적으로 눈이 시큰거릴 때마다 간간히 마른세수를 했다. 

비행기에 오르고 시간이 얼마쯤 지났을까 석양이 졌다.

아, 정말 가는구나. 난 앞으로 관계로부터의 지침과 세상일의 걱정을 떠나, 발에 잡힐 물집이나 오늘 몸을 뉘일 곳, 예고 없이 찾아오는 감기 따위를 걱정하겠지. '과연 내가 기대했던 여행일까'라고 생각하다가 피식 웃었다. "내가 기대하고 있는 여행이 뭔데?" 고생이라면 개고생이겠지. "그래, 그래서 내가 원하는 여행이 뭔데?" 그저 낯선 곳에서 살아내면 그게 여행이지 뭐. 그렇게 나는 떠났다. 그렇게 어수룩하게나마 여행자가 되었다.


비행기 위에서 날마다 대답할 하나씩의 질문을 적는다.

나는 몇 가지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대답들은 또 어떠한 형태일 것인가. 나는 나를 얼마나 잘 알고 있으며 또 얼만큼을 알아내고 돌아올 것인가. 무엇 하나 예상할 수 없는 나의 여행은 일기장에 어떤 형태로 빼곡히 기록될 것인가. 내가 만들어낼 나라는 사람의 작은 기록을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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