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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광호 Sep 05. 2020

우연한 친절

한 번은 한 낮에 땡볕에서 아무런 보호장구 없이 지나가던 노숙인을 만났다. 혹시 얼마 도와줄 수 없냐는 물음에 주머니를 뒤져 작게나마 보탰다. 요즘같은 때 마스크도 없이 위험해서 어떡하냐고 안전하시길 바란다고 이야기하자 본인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원래 학교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여러가지 불우한 사건들로 인해 직업을 잃고 이렇게 되었다며 눈물을 보였다. … 우리는 서로의 안전과 행복을 기원하며 헤어졌다.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낀다. 하지만 얄궂게도 할 수 있는 것이 0은 아니어서 여전히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 누가 내게 안부라도 물어주길 바라듯, 쉬지 않고 안부라도 물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어려움이 아니라 외로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무리 힘들어도 단 한 사람이라도 진심으로 나를 위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쉽게 스러지지 않는 현상이 나타난다. 예컨대 같은 병에 걸려도 곁에 누군가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더 예후가 좋고 똑같이 실직을 하더라도 곁에서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을 때 더 재취업이 빠른 현상이 나타난다. 


친밀한 관계들만 삶을 지탱해줄 것 같지만 스쳐지나가는 우연한 친절도 삶을 움직인다. 지하철에서 처음 본 낯선 타인과의 인사 한 마디에도 친구를 만난 것처럼 기분이 둥실둥실 좋아진다는 연구가 있었다. 최근 사이콜로지컬 불리틴(Psychological Bulletin) 저널에 실린 연구에 의하면 수많은 기존 연구들을 종합 분석한 결과 계획적으로 하는 봉사활동 뿐 아니라 우연히 스쳐지나가듯 하는 선행 또한 (때로는 계획적인 봉사보다 더 크게) 큰 행복과 삶의 의미감, 또 자아실현과 관련을 보였다고 한다.


대체로 약하고 무력한 인간이지만 작은 손길 하나만 있으면 무한동력 배터리라도 장착한 듯 다시 살아날 힘을 얻는 것이 또 우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대한 어려움 앞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것일 거다. 작은 친절에도 모두가 크게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가진 축복이다. 


-박진영, <박진영의 사회심리학_코로나 시대 우연히 베푼 친절이 삶을 지탱한다>, 동아사이언스, 20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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