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배운 것 중에 하나는 “어떤 것에 대해서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설명하는 것이다”는 겁니다. 강연을 할 때 저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제가 확실히 맞다고 아는 것을 그저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이야기를 볼 때 저는 어떤 의미에서 초심자의 마음으로 임합니다. 성경은 미스테리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왜 만들어졌으며, 왜 우리는 이를 보존하며, 어떻게 성경이 2000년 동안 하나의 전체 문화의 동기가 돼서 세상을 바꿨으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걸까요? 이는 결코 명백하지 않습니다. 제가 종교에 대한 경솔한 비판들에 짜증이 나는 이유는, 그런 비판을 하는 이들이 현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는 만만찮은 현상입니다.
저는 진심으로 이데올로기를 불구가 된 종교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데올로기는 마치 팔 다리를 잃은 종교가 절뚝거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일정량의 안정과 집단 정체성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왜곡되고 뒤틀리고 미쳤고 굽었습니다. 이데올로기는 그 기저에 있는 비옥하고 진실된 무언가에 기생하는 기생충입니다.
인간이 신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다는 것은 사실 우리의 법체계의 주춧돌입니다. 이 깨달음은 저에게 굉장한 충격을 줬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우리의 법체계가 그러한 형이상학적 전제 없이는 무너진다는 것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진짜로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로스쿨에는 서양 문명의 법치구조를 가능한 한 빠르게 약화시키는 포스트모던주의자들이 들끓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러한 것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법을 그저 유토피아를 이루기 위해 사용하는 가벼운 실용적인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정말로 나쁜 생각입니다. 이러한 형이상학적 기반들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우리가 궤도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제가 보기에는 아주 신기합니다. (조던 피터슨의 이 발언은 ‘그 어떤 인간이나 국가도 숭고한 이념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이 세상에는 단 하나의 숭고한 이념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의 영혼은 불멸한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삶의 의미를 주는 모든 ‘숭고한’ 인생의 좌표들은 단지 여기에서 파생했을 뿐이다’라는 도스토옙스키의 문장을 떠오르게 한다)
-조던 피터슨의 <성서 이야기에서의 심리학적 중요성> 강의 중
p.s
피터슨의 예술가에 대한 인상적인 발언.
우리는 완전히 구체화된 방식으로 이해하기 전에 다양한 방법으로 이해합니다. 우리는 구체화된 공간을 가지고 있고 거기서 의논을 합니다. 그리고 그 바깥에는 꿈과 같은 것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는 감정적인 꿈입니다. 그리고 그 바깥에는 우리가 전혀 모르는 것들이 있습니다. 신비주의자들과 예술가들은 그 꿈의 영역에서 삽니다. 그들은 ‘완전히 알 수 없는 것들과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들 사이의 중재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