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성경 이야기들을 알지 않고 인문학과 인문학의 열매를 제대로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성경 이야기들이라는 꿈으로부터 인문학이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꿈과 배경 지식을 알지 못하면 인문학의 아주 심오한 것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단테의 <신곡>이 그 중 하나이고, 밀턴의 <실낙원> 역시 완전히 놀라운 작품이죠. 밀턴은 인간에게 신의 방식을 변호하기 위해서 <실낙원>을 썼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야망입니까! 밀턴은 진지했습니다. 그는 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뤘습니다. 밀턴이 <실낙원>을 쓴 이유는, 이 역시 꿈입니다. 이 꿈은 존재의 본질과 악의 본질을 설명하려 노력합니다. 여러분은 그 아래에 놓인 성경 이야기들을 알지 못하고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는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굉장히 심오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삶이란 심오한 문제이기에 여러분들은 심오한 지식을 필요로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면, 당신이 뒤로 숨어서 안전한 삶을 산다할지라도 그것이 삶의 궁극적인 질문을 마주하는 것을 막지는 못합니다. 그 질문은 모든 사람들의 눈앞에 놓여 있습니다. 적어도 인생의 한 순간에는 말이죠. 만약 당신이 그 질문을 온전히 마주하고 제대로 다룬다면, 그리고 그 결과로 힘의 등대가 된다면 훨씬 더 좋을 겁니다. 저는 그게 인문학이 가르쳐야 하는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지혜란, 당신이 삶의 비극에 고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조던 피터슨의 강의 <성경 이야기의 심리학적 의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