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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광호 Feb 10. 2019

<공포와 전율> 중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그의 후손을 통하여 땅위의 모든 종족이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다. 시간이 흘렀다.  아브라함은 믿었다. 


그는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설움에 잠겨 하루하루를 손꼽아 세지 않았다. 그는 사라가 늙어빠지지나 않을까 의심하면서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는 사라가 늙어빠지지 않도록, 또 사라와 더불어 그의 기대가 늙어빠지지 않도록 태양의 진행을 멈추려고 하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늙었고 사라는 온 땅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이었고, 땅위의 모든 종족이 그의 후손으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의 상속자였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젊은 날의 염원이 젊은 날에는 거절당하고, 온갖 고난을 겪은 노후에야 채워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었다. 그리고 약속을 꽉 붙들고 놓지 않았다. 만약 그가 흔들렸다면, 그는 약속을 던져 버렸을 것이다. 


자신의 염원을 버린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지만, 자신의 염원을 버리고 난 후에도 그 염원을 꽉 붙들고 놓지 않는다는 것은 더욱 위대한 일이다. 영원한 것을 붙든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지만, 시간적인 것을 버리고 나서도 역시 그 시간적인 것을 꽉 붙들고 있다는 것은 더욱 위대한 일이다. 


이리하여  때가 찼다. 만약 아브라함이 믿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사라는 마음이 아파서 죽어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슬픔 때문에 마음이 찢어져서 때가 찼음을 알지 못하고, 젊은 날의 꿈을 비웃듯이 그것을 비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젊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항상 최선의 것을 기대하는 자는 삶에 속아서 노인이 되고, 항상 최악의 것을 각오하는 자는 젊어서 늙고 말지만, 믿는 자는 영원한 젊음을 간직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기대한 바에 따라서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놀라운 사실이다. 그러나 더 깊은 의미에서 생각한다면, 아브라함과 사라가 그런 염원을 품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젊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과, 그리고 믿음이 그들의 염원을, 동시에 그들의 젊음을 간직케 했다는 사실에 신앙의 기적이 있는 것이다. 그는 약속의 성취를 받았다. 그는 그것을 믿음으로써 받았다. 그리고 그것은 약속에 따라서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일어났던 것이다. 


-죄렌 키에르케고르 <공포와 전율>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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