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광호 Mar 21. 2019

<팡세> 중

인간이 알고 있는 제일 작은 것을 찾아내게 하라. 인간에게 진드기 한 마리를 보여 주되, 그 작은 몸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세분화해서 보여주라. 관절이 있는 다리, 다리에 있는 혈관, 혈관 속의 피, 피 속의 체액, 체액 속의 물방울, 물방울 속의 수증기. 그것을 인간에게 보여주고 인간의 상상력이 다 소모될 때까지 그것을 더 잘게 분해하여 세분화하게 하라. 그는 아마도 이것이야말로 자연 속에서 제일 미소한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나는 그 안에 새로운 심연이 있음을 그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그를 위해 눈에 보이는 우주만이 아니라 자연에 대해 사고할 수 있는 데까지 광대무변한 것을 이 미분자의 축도 안에 그려 보이려고 한다. 그는 그 안에서 수많은 우주를 보게 될 것이며, 그 각 우주 속에는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와 같은 비율로 하늘과 행성, 지구가 있음을 볼 것이다. 그 지구상에서 여러 동물을 보게 되고, 최후에는 진드기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진드기 속에서 그는 앞에서 진드기가 지니고 있던 모든 것을 재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외의 것 속에서도 끝없이 같은 것을 계속해서 발견해 나가면, 광대하기 때문에 놀라운 불가사의와 마찬가지로 미소하기 때문에 놀라운 이 불가사의에 대해 그는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를 것이다. 왜냐하면 좀 전까지만 해도 우주 속에서 감지할 수 없었고, 만유의 품안에서도 감지할 수 없었던 우리의 육체가 이제 인간으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무에 비해 거상이 되고, 세계가 되고, 도리어 만유가 된다는 사실에 경탄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이와 같이 자신을 되돌아보면 어느 누구든 자기 자신에 대해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또 자연에게 부여받은 자신의 육신이 무한과 무의 두 심연 사이에 가로놓여 있음을 알고는 그 불가사의에 전율할 것이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도대체 무엇인가? 무한에 비하면 무요, 무에 비하면 일체, 무와 일체의 중간자이다. 양극에서 무한히 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 극단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사물의 극과 그 원리는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신비에 가려있다. 


인간은 자신의 모체인 무를 볼 수 없는 것처럼 자기 자신을 삼켜버리는 무한도 함께 볼 수 없다. 


만물은 무에서 나서 무한을 향해 나아간다. 이 경이로운 진행과정을 어느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오직 이 불가사의를 창조해 내는 신만이 이해할 수 있다. 그 외의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러한 무한을 깊이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무모하리만치 자연탐구를 해왔던 것이다. 

모든 걸 알려고 하는 것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왜냐하면 무한한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으면 그와 같은 사고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블레즈 파스칼 <팡세> 중

작가의 이전글 죽음은 삶의 간결한 요약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