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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광호 Mar 26. 2019

<뉴욕 3부작> 중


그 모든 찬사에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그 무렵 나는 힘든 시기를 겪고 있어서 솔직히 말하자면 나 자신을 그렇게 높이 평가할 수 없었다. 내가 이런저런 글들을 많이 쓴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것들은 찬사를 받을 만한 것이 못되었고, 또 나는 그것들을 특히 자랑스러워하지도 않았다. 내가 보는 한에서는 그것들은 잡문보다 나을 것이 거의 없었다. 처음에 나는 언젠가 소설가가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내가 마침내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 그들의 삶을 바꿀만한 어떤 작품을 쓸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대단한 희망을 품고 글을 쓰기 시작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차츰차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에게는 그런 책을 쓸 만한 재주가 없어서 어느 시점에서인가 그 꿈을 포기하자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무튼, 논평을 쓴다는 것은 소설보다는 더 간단한 일이었다.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한 논평에 이어 다른 논평을 써 나감으로써 나는 어느 정도의 생활비를 벌 수 있었다. 그리고 또, 그 일이 가치가 있건 없건, 인쇄물에 내 이름이 거의 끊임없이 실리는 것을 보는 기쁨을 누릴 수도 있었다. 나는 상황이 그보다 훨씬 더 비참해졌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적어도 나는 서른도 채 되지 않아서 이미 어느 정도 명성을 얻고 있었으니까. 나는 시와 소설에 대한 서평으로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거의 모든 것에 대해 논평을 쓸 수 있었고, 그런 대로 좋은 평판도 얻고 있었다. 영화, 연극, 미술 전람회, 연주회, 책, 심지어 야구 시합에 이르기까지, 요청이 있기만 하면 나는 글을 쓰곤 했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명석한 젊은이, 상승세에 있는 새로운 비평가로 보았지만 내심으로 나는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늙은이가 된 느낌이었다. 내가 그때까지 해온 일을 모두 합쳐봤자 아무것도 아닌 일의 단편들일 뿐이었다. 기껏해야 산들바람에도 날아가 버리고 말 먼지밖에 되지 않았다. 


따라서 팬쇼의 찬사는 내게 혼란스러운 감정을 안겨 주었다. 한편으로 나는 그가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옳았다고 믿고 싶었다. 나는 내가 혹시 나 자신에게 너무 가혹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일단 그런 생각이 들자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되었다. 어느 누가 희망의 가능성을 뿌리칠 만큼 강할 수 있을까? 언젠가 내 눈으로 부활한 내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스쳤다. 나는 불현듯 세월을 가로질러, 우리를 계속 떼어 놓았던 그 오랜 침묵을 가로질러 팬쇼에게 물밀듯한 우정을 느꼈다. 


-폴 오스터 <뉴욕 3부작_잠겨 있는 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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