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자신을 조롱하고 못 박는 사람들까지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누가복음 23:34)
우리는 스스로의 우주에 갇혀, 그 우주내에서 하나님의 섭리로 살아 갑니다. 그렇기에 인식의 한계에 부딪혀 어떤 죄를 짖고 있는지 모르는 이들을 예수님께서는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꼐서는 용서의 중요성을 끊임 없이 가르치셨습니다.
베드로가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라고 묻자, 예수님은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21-22)
심지어 기도를 가르치실 때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라고 기도 하셨는데, 이는 우리 또한 무지로 인해 죄를 많이 지었었으며, 이 부분을 돌아보고 인식의 한계에 갖힌 이들을 너그러이 용서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저는 용서에 있어서 성경에서 요셉의 이야기를 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의 악한 행위(자신을 노예로 판 일)를 단순히 '인간적인 배신'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더 큰 계획과 섭리 안에서 일어난 일로 이해했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죄를 부정하지 않았지만, 그 죄를 통해 하나님께서 가족과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원하시려는 더 큰 목적을 이루셨음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요셉이 복수심을 내려놓고 용서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을 아주 현명하게 용서 하였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정탐꾼으로 몰아세워 (창세기 42장) 모질게 대하고 감금하여, 과거 자신을 팔아넘겼던 일에 대해 그들이 죄책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특히 형제들이 과거의 이기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진심으로 변화하고 회개했음을 확신하는 과정을 거쳐 진정한 용서와 화해의 선포를 계획합니다.
그리고 감정의 해소를 넘어 말로만 용서한 것이 아니라, 형들과 아버지 야곱의 온 가족을 애굽으로 이주시켜 가장 좋은 땅인 고센에서 살게 하고, 기근이 끝날 때까지 물질적으로 돌보고 책임졌습니다. (창세기 45:11) 요셉의 용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는 영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형제들의 진정한 회개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따뜻한 포옹과 실질적인 돌봄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용서는 사랑입니다. 나를 노예로 팔아 넘겨 목숨이 위태하고 감옥까지 갇히면서 13년 동안 인고의 시간을 겪었는데 이를 용서하기란 얼마나 어려웠을까요?
요셉은 13년 동안 하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 과정속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계획하신 큰 일이 있으심을 알고 따랐습니다. 하나님과 매일 교제하였습니다. 요셉은 노예 생활과 감옥 생활 중에 하는 모든 일에 성공하고 형통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그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고" (창세기 39:3) 보디발과 간수장이 그를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요셉이 하나님과 얼마나 친밀하게 교제했는지 보여줍니다.
요셉의 용서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무한한 용서, 사랑 그 자체입니다.
나를 공격하는 이들을 용서하십시오.
그들은 그 공격의 당위성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계획 아래에 일어난 공격임을 믿고 따르며
큰 사랑으로 회개의 때를 기다리며
현명한 용서를 통해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임을 믿고 따르며
사랑으로 용서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용서를 하기 위해선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로
하나님의 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용서는 그들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하고,
실질적인 돌봄까지 이어지는 사랑의 큰 힘이 필요합니다.
강건해지십시오.
스스로의 영혼이 잘 돌보시고
범사가 잘 되시길 기원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