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은희경의 <새의 선물>

농담 같은 삶

by 수산

한국 문학이라고는 잘 모르는 내가 지인의 추천으로 알게 된 소설이다. 한국 냉소주의의 거장이라며 거듭 읽어보길 권하던데, 읽고 보니 과연 추천할 만하다고 납득했다. 건조하면서도 통찰력 깊은 문장이 주를 이루며 곳곳에 나오는 한국적인 묘사들이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몇 문장은 필사도 했다. (TMI인데, 강력 추천해준 지인의 필체와 은희경의 글이 어딘가 닮아 있어 매우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역시 좋아하는 글을 닮는 모양이다.)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 또한 볼거리다. 주변에서 한 번쯤 볼 법한 인물상들이 자주 나오는데, 그래서인지 다 읽고 난 감상은 '지붕 뚫고 하이킥' 같다는 것이었다. 시트콤 치고 분위기가 좀 무겁긴 하지만, 주인집 손녀인 진희를 중심으로 그 집에 세를 내고 사는 이들의 삶이 소상히, 또 긴밀하게 얽혀 표현되어 있다는 점이 그렇다. 그러다 보니 인물들 하나하나에게 정이 붙어서(광진테라 아저씨를 제외하고는 그랬다.) 읽는 내내 손에 땀을 쥐었다. 미스 리가 돈을 훔쳐 야반도주했을 때나 광진테라 아줌마가 폭력적인 남편을 피해 도망갔을 때, 혜자 이모를 찾으러 온 여자가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을 때가 특히 그랬다.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문구라고 하면 이것일 것이다. 부끄럽지만 난 이 구절은 알고 있어도 어디서 나온 말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삶도 그런 것이다.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 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

농담 같은 삶. 진희의 이 말에는 그의 냉소주의적인 시각이 드러난다. 난 이 말에 일부 공감하지만 나의 삶이 농담으로만 써 내려가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진희가 버스정류장에서 광진테라 아줌마의 이변을 눈치챘을 때 광진테라 아줌마가 집을 도망 나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전개보다는 남편에게 칼을 꽂아 넣는 전개를 바랐다. 나의 삶이 농담으로 버무려지거나 '삶에 집착하여 불성실'해지기보다는, 삶의 가치를 알고 치열해지기를 원한다.


그런 부분에 있어 군데군데 아쉬운 점이 있었다. 직전에 읽은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과 비교하여 읽으니 더욱 그렇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 3년 앞서 발표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가 훨씬 강렬하고 직접적이다. 개인의 성향 차일지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 취향에 잘 맞았다. <새의 선물>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빙빙 돌려하는 데다 위기에 대한 극복이 소극적이라(물론 작가의 의도는 싸늘한 현실 묘사를 통해 독자들이 정신 차리길 바란다는 것임을 알겠다.) 답답했다.


아마 나의 현실과 지나치게 맞닿아 있는 이야기가 통쾌하게 풀리지 않은 것에 대한 갑갑함이리라 생각한다. 나는 소설을 통해 현실에서 맛보지 못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어 하는데 그것이 도무지 충족되지 않았다. 특히 앞서 언급했듯 광진테라 아줌마의 생각만 떠올리면 가슴께가 꽉 막힌 듯 억울함이 치밀어 올랐다. 마음씨 고운 사람이 폭력 남편한테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례가 주변에 지나치게 가까이 있어서 그렇다. 강민주의 어머니처럼 딸과 함께 남편에게서 도망가 억 소리 나는 돈을 모으는 이야기는 현실성이 떨어지지만 기분은 좋아지지 않는가.


우리 어머니는 내가 중학생 때 우울증에 걸리셨던 적이 있다. 과도한 스트레스에 영양실조 증세까지 있어 직장에서 쓰러지시기까지 했다. 병원에도 입원하시고 퇴원 이후에도 몇 달을 일을 쉬시며 친정에서 요양하셨으며 나도 어머니를 따라 외할머니 댁에서 머물렀다. 어머니는 아버지 때문이라고 했고 그건 거의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성정이 순한 어머니였는데 그때는 정말 딴 사람을 보는 것처럼 히스테릭했다. 나까지 잘못되면 죽어버릴 거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그런 말씀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머니가 어느 날 날 두고 영영 어디에 가버릴까 봐 불안해서 따라 미쳐버렸다. 어머니가 내 전화를 안 받으면 밖에 나가서 몇 시간을 엄마, 엄마하고 울면서 어머니를 찾아다녔다. 어머니는 증상이 호전된 이후에도 아버지 대신 돈을 벌러 출근해야 했고 내가 아버지와 반쯤 절연한 지금에도 아버지를 만나러 다니신다.


한국 문학과 닮은 구석이 있는 내 삶에서 어느 방향이든 강진희나 강민주를 미워할 수 없으리라는 것은 분명했다. 진희는 조숙하지만 여전히 감정적인 지지를 필요로 하는 외로운 아이이며, 민주는 냉철하지만 여성들을 돌보려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여자이다. 이런 여성 캐릭터들이 나오는 소설이라면 앞으로 몇 권이든 계속해서 읽고 싶다.


글을 마무리하며 내가 진희를 사랑하게 된 문구를 인용하고 싶다. 나는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말했듯 사랑과 동정이 깊은 차원에서 다르지 않다는 말을 믿는다.


나는 이모와 허석과 할머니에게 한꺼번에 배신당했으며 더욱 비참한 것은 그렇게 배신당한 것을 아무에게도 눈치채여서는 안 되므로 이모처럼 노골적으로 비탄에 빠질 수 없고 위로나 배려를 받을 수도 없다는 점이었다. 내 고통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의 내면을 이해할 수 있지만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매거진의 이전글2.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