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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산 Nov 14. 2023

심리상담 3주 차 후기

직업적 흥미와 나만의 방

사진 더럽게 못 찍은 거 아는데 고치기 귀찮다……


지금까지 했던 일 경험, 장점, 단점, 나에 대해 알게 된 점, 개선하고 싶은 점을 쭉 적어갔다.

이 얘기를 30분 정도 했나. 솔직히 직업 관련해서는 얻어간 것이 없다. 나는 내가 취업 시장에서 얼마나 매력 없는 존재인지 안다. (지금 간절한 마음으로 이력서 넣은 데가 있는데 서합조차 불확실하다……)


그리고 아빠 얘기로 넘어갔다. 눈을 감고 내 앞에 아빠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하셨다. 근데 진짜 할 말이 없어서…… 또 그냥 울었다. 뭐 떠오르는 감정을 말하라는데…… 없다. 지금도 아무 생각이 안 난다. 이거 내일모레까지 써가야 하는데 큰일이다.


정말 내 모든 문제의 근원은 아빠의 부재일까? 잘 모르겠다. 지금까진 전부는 아니어도 20% 정도는 그런 줄 알았는데 요즘은 문제가 나한테 있는 것 같다. 이걸 평생 이겨내지 못할 생각을 하니까 내 인생한테 내가 열받는다. 이겨낸 것처럼 멀쩡히 살다가도 생리할 때가 되거나 새벽에 배고프거나 위기에 부딪히면 이 사실을 곱씹으면서 괴로워하겠지. 그게 참 부질없다.


취준을 하면서 아빠가 곁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가끔 주변에 보면 ‘아빠가 먹여 살릴 테니 일은 하지 말고 놀아라’하고 말해주는 아빠가 있다는데 그게 진짜일까. 우리 아빠도 나 어릴 땐 그런 소리를 했던 거 같기도 하고. 최근에는 추석 때 봤는데 그때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조언을 했다. 아빠는 하고 싶은 일보다는 잘하는 일을 하면서 평생을 살았다는 말을 하면서 말이다. 참 좋은 말이긴 한데 내가 지금 그럴 처지가 되나 싶다. 뭘 쓸데없이 도전했다가 집안 말아먹은 처지가 되기 싫다.  그건 아빠랑 똑같은 사람이 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다 기회비용이 너무 큰 것들 뿐이다. 그걸 굳이 도전해서 말아먹고 싶지 않을뿐더러 그렇게까지 하고 싶어 죽겠는 건 또 없다.


아무튼 내가 우니까 상담사님이 내가 편한 공간을 상상해 보라고 하셨다. 나는 왠지 모르게 <미녀와 야수>에 나올 것처럼 짙은 고동색의 나무로 만든 가구가 가득한 방을 상상했다. 그곳에는 알록달록한 식탁보와 털 달린 러그가 있었고 책장에 책도 가득했다. 이상하리만치 천장이 높았다. 조명은 노르스름했고 교보문고에서나 날 법한 냄새가 났다. 그리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그곳을 상상하며 안전한 곳에 있다는 생각을 해보라고 하셨다. 좀 현실도피 같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나쁘지 않은 방법으로 들렸다. 이 조언은 듣고 나서 종종 사용했는데 효과는 잘 모르겠고 나에 대해 잘 알게 된 것 같아서 만족했다. 적어도 내가 어떤 장소에서 가장 편한지 알게 된 것 같다.


상담 끝나고 나가는 길에 키 크고 스타일 좋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기분 좋았다. 꼬아서 들으면 시간당 7만 원 내는데 이런 칭찬은 당연하지 싶기도 하고 한편으론 상담사님 성격이 참 좋으시다 싶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내가 그날 옷을 좀 잘 입고 갔긴 했나 보다 해서 뿌듯하기도 하다. 나는 참 있는 그대로 칭찬을 못 받아들인다. 입은 옷들 대부분이 내가 입고 싶어서 입은 게 아니고 엄마 옷을 얻어 입어서이기 때문인 것 같다. 내 칭찬인데 내 칭찬 같지가 않다. 이거 엄마 옷이에요. 그렇게 대답하고 싶은 걸 꾹 참고 그냥 감사합니다 했다.


(여기서부터 딴 얘기)

하… 지금은 치과 왔는데 고칠 곳이 2681030군데래서 개우울하다… 아빠가 왜 병원 가기 싫어하는지 알겠다. 비싸니까. 아파 죽겠는데 비싸기까지 하면 더 우울하다. 아 진짜 인생이 고달프네…… 고달파죽겠네…… 오늘따라 삶이 벅차네……


신경 치료받았다…… 내일 상담도 받고 치료도 받아야 돼…… 오발탄이 왜 나왔는지 알겠다. 난 이렇게 멀쩡한데 치료를 받으라고요?! 전 아프지 않은 데도요?!

ㄴ그렇지만 신경이 몽땅 괴사 되었습니다.

ㄴㄴ근데 나는 이도 잘 닦는데요?!?!?

ㄴㄴㄴ뭔선천적인치아모양(치외치라는 형성이상증)때문이라고 합니다…아진짜울고 싶다…… 그냥 갔는데 나는 (겉으로만) 멀쩡하고 의사는 심각하다 말하는 기분이 엄청 절망적이다…… 나 나중에 이거보다 더 큰 병 걸리면 어떡하지? 못 받아들일 것 같다……

제가요?! 왜 아픈 거죠?!?! 싫은데요?!?!?! 아니 저는 아빠도 없고 가난한데 건강까지 조져야 하나요?!?!

열심히 살자……

열심히 건강하게 살아서 다 이겨버릴래.

진짜 예방주사도 꼬박꼬박 맞고. 건강검진도 절대 안 거를 거고. 이번에 큰코다쳤다고 생각하고 내 모든 생활습관을 다 뜯어고칠래.


그래…… 어차피 지구는 돈다……

막으려 해도 어쩔 수 없다.

방금 주문한 따뜻한 얼그레이는 10분만 있으면 식을 거고 나는 한 달 지나면 스물일곱 살이 될 거고 오늘 저녁에는 마취 풀린 신경치료 때문에 아파서 뒹굴어야 돼…… 그건 아무도 막을 수가 없다. 받아들여.

그래도 카페에서 나오는 음악이 내가 좋아하는 노래고(발레리) 오늘 엄마랑 같이 집에 들어갈 거고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쁘지 않으니까 그냥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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